알레샨드르 드 고베아

알레샨드르 드 고베아

[ Alexandre de Gouvea , 湯士選 ]

요약 베이징교구장으로 교황에게 조선 교회의 사정을 알려 조선 천주교회를 베이징교구에 편입시켰다. 주문모 신부 등을 파견했으며 <조선왕국에 대한 천주교의 기적적 도입 및 그 기적적 진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교회 초창기 역사를 기록하여 남겼다.
원어명 Alexandre de Gouvéa
출생-사망 ? ~ 1808
별칭 중국명 탕사선(湯士選), 구베아
국적 포르투갈
활동분야 종교

본명 Alexandre de Gouvea. 1782년 베이징교구[北京敎區] 교구장에 임명되어 1785년 1월 18일 현지에 도착하였다. 성 방지거 제3회 로서 건륭황제(乾隆皇帝)의 비호를 받아 흠천감정(欽天監正) 겸 (國子監) 산학관장(算學館長)이라는 관직에 올랐다. 전교(傳敎)에도 힘쓰는 한편, 에서의 (典禮)문제에 관한 청의 명령을 엄하게 지켜, 신자들로 하여금 적 의식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10년간 계속되던 베이징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킴과 아울러, 1790년 10월 6일 교황 비오 6세에게 한국 교회 사정을 처음 상소하여 1792년 7월 5일 로마에서 접수함으로써 비로소 조선천회를 정식으로 베이징교구에 편입하게 하였다. 또 첫 조선 본당 신부로 출신 오(吳) 신부를 1791년 2월에 처음으로 조선에 파견하였고, 1794년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두 번째 조선 본당신부로 보냈다.

당시 쓰촨[四川] 교구 주교이던 드 생트 마르탱(한자명 郭恒開) 주교의 청에 따라 <조선왕국에 대한 천주교의 기적적 도입 및 그 기적적 진전>이라는 제목으로 약 14년간(1784∼1797)의 한국교회 초창기 소사(小史)를 엮어 1797년 8월 15일 쓰촨 주교에게 보냄으로써, 한국 교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취를 남겼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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