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클레르
- 요약
프랑스의 영화감독. 《파리의 지붕 밑》으로 흥행에 성공한 후 《백만장자》, 《파리 축제》등의 걸작을 만들었다. 이후 《자유를 우리에게》, 《최후의 억만장자》, 《분꽃》외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원어명 | René Cla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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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 1898.11.11 ~ 1981.3.15 |
국적 | 프랑스 |
활동분야 | 영화 |
출생지 | 프랑스 파리 |
주요저서 | 《나의 회상》(1951) |
주요작품 | 《파리 축제》(1932) |
본명은 René Chomette. 파리 출생. 영화평론을 쓰면서 ·조감독을 거쳐 1923년 《잠자는 파리 Paris qui dort》를 발표하였다. 초기의 그는 다다이즘 ·의 영향을 받아 대담한 기교와 기발한 를 구사하여 전위영화풍의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막간 Entr’acte》(1924) 《물랭루즈의 유령》(1925)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맥고모자 Un Chapeau de paille d’Italie》(1927)부터 점차적으로 적 수완을 보이기 시작하여 유성영화 제1작 《파리의 지붕 밑 Sous les toits de Paris》(1930)에서는 훌륭한 음향 처리와 서민적 정서의 표현으로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어서 《백만장자 Le Million》(1931)는 경묘한 터치로 그린 의 걸작이고, 《파리 축제 Quatorze Juillet》(1932)에 이르러 그의 명성은 확정적인 것이 되었다. 아름답게 흘러가는 화면, 분위기의 묘사, 싱싱한 정감, 음악 효과 등은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명작이다. 《자유를 우리에게 À Nous 1a liberté》(1931)는 문명비평이고, 《최후의 억만장자 Le Dernier milliardaire》(1934)는 파시즘에 대한 정치풍자였다.
그 후 으로 건너가 문명을 비꼬아서 그린 《유령 서쪽으로 가다 The Ghost Goes West》(1935)를 만들었고, 중에는 미국으로 피하여 《부인은 마녀 I Married a Witch》(1942) 등을 하였으나 호평을 받지 못하였다. 전후에 귀국하여 《침묵은 금 Le Silence est d’or》(1947) 《악마의 아름다움 La Beauté du diable》(1949) 《분꽃 Les Belles-de-Nuit》(1952) 《라일락의 문 Porte des Lilas》(1957) 《세계의 모든 황금 Tout l’or du monde》(1961) 《풍아(風雅)한 연회 Les Fêtes galantes》(1965) 등 신경을 쓴 작품을 계속해서 발표했으나 왕년의 생채(生彩)는 기대할 수 없었다. 영화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나의 회상 Reflections on the Cinema》(195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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