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콩트

오귀스트 콩트

요약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의 창시자. 여러 사회적 ·역사적 문제에 관하여, 온갖 추상적 사변을 배제하고, 과학적 ·수학적 방법에 의하여 설명하려고 하였다. 3단계 법칙에서는 인간의 지식의 발전단계 중 최후의 실증적 단계가 참다운 과학적 지식의 단계라고 주장하였다.
원어명 Isidore-Auguste-Marie-François-Xaviér Comte
출생-사망 1798.1.19 ~ 1857.9.4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철학, 사회학
출생지 프랑스 몽펠리에
주요저서 《실증철학 강의》(1830∼1842)

남프랑스 출생. 의 에콜 폴리테크니크 재학 중 교수 배척운동에 가담하여 퇴학당하였다. 그 후 ·물리 · ·생물 · · 등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였으며, 생시몽을 알게 되어 그의 잡지 을 도우면서 그에게서 사상적인 영향을 받았다. 콩트는 여러 사회적 ·역사적 문제에 관하여, 온갖 추상적 사변(思辨)을 배제하고, 과학적 ·수학적 방법에 의하여 설명하려고 하였다. “절대적인 격률(格率:maxim)은 하나밖에 없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라는 그의 말은, 적(形而上學的) 학설의 의(擬)=절대성을 배격하고, 감각적 경험에 의하여 확증할 수 있는 여러 사실과 이것들의 관계에만 전념한다는 과학적이며 실증적인 (相對主義)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유명한 3단계 법칙에서는, 의 지식의 발전단계를 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적인 3가지로 구분하고, 최후의 실증적 단계가 참다운 과학적 지식의 단계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실증과학의 체계는 대상의 복잡성에 따라 차례로 수학 · · ·화학 · ·(질서에 대응하는 社會靜學과 진보에 대응하는 社會動學으로 구분된다)으로 성립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만년에 클로틸드 드 보 부인과 사귀게 되어, 그녀를 환상적인 애정으로 사랑하였으나, 2년 후 그녀가 죽고, 또 실직하자 친구들의 도움으로 생활하였다. 그의 까다로운 성품 때문에 친구들이 이반(離反)하는 등, 당시의 상황도 원인이 되어 마침내 에 빠져 인간성을 숭배하는 인류교(그 자신이 이며, 보 부인은 성녀)를 주창하게 되었다. 즉, 전기의 객관적 과학주의는 주관적 ·종교적 상징주의로 변모하였는데, 이 모순적인 변모 속에 인간 콩트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저서로는 《실증철학 강의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6권, 1830∼1842)와 《실증정치학 체계 Système de politique positive, ou traité de sociologie, instituant la religion de l’humanité》(4권, 1851∼1854) 등이 있다.

참조항목

, , , , , , , , , , , , , ,

역참조항목

, , , , , ,

카테고리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