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군영
[ 親軍營 ]
- 요약
임오군란을 계기로 편제된 조선의 중앙군제.
후 수도방위군을 정비 ·강화할 방책을 모색하던 조선정부는 나라에 군대의 훈련과 신식무기의 원조 등을 청하여 그들의 감독과 훈련 아래 1,000명의 친군 좌영(左營)을, 500명의 친군 우영(右營)을 편성하였다.
이로부터 1884년까지 친군 전영(前營) ·후영(後營)과 별영(別營)이 편성됨으로써 친군 5영의 새로운 중앙군제가 성립되었으며, 여기에 구식 군영인 용호영(龍虎營)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총융청(摠戒廳)의 4영이 흡수되었다. 또한 친군영 조직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으로 확대되어 강화도에 친군 심영(沁營), 평안도에 친군 서영(西營), 경상도에 친군 남영(南營) 등을 두어 중앙의 친군영 조직을 본받아 훈련하고 때로는 상경하여 중앙군과 함께 훈련하도록 하였다.
중앙의 각 친군영은 영사(營使)가 이를 통솔하고 각 군영의 지휘부는 병방(兵房) ·영관(領官) ·참군(參軍) 각 1명, 초관(哨官) ·별군관(別軍官) 각 5명, 초장(哨長) 5∼6명, 집사(執事) 25명, 별무사(別武士) 8∼9명, 군의 1명으로 구성하였고, 사무직으로는 서리(書吏) 10여 명, 정령대령서리(政令待令書吏) 1명, 기별서리(奇別書吏) ·서기 각 2∼3명, 초서 5∼6명이 있었다. 의장(儀仗)은 뇌자(牢子) ·순령수(巡令手) 각 87명, 등롱군(燈籠軍) ·장막군(帳幕軍) 각 44명, 규칙(糾飭) 10여 명, 나팔수 5∼6명으로 구성되었다.
부대편성은 5∼6초(哨:500∼560명), 대령군(待令軍) 200여 명, 화병(火兵) 40∼50명, 별파진(別破陣) 10여 명, 복마군(卜馬軍) 30여 명, 수문군(守門軍) 60여 명, 아기수(兒旗手) 20여 명, 후병(侯兵) 20∼30명으로 구성되었고, 기타 장부(長夫) 30여 명, 통사(通事) 1명, 각소 원역(各所員役) 8∼10명, 마부 5명, 잡색원(雜色員) 500여 명이 있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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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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