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영

치영

[ 緇營 ]

요약 조선시대 수도 외곽의 수비를 담당하던 총융청(摠戎廳)의 승군(僧軍) 군영.

치영은 1747년( 23) 이후 의 중흥사(重興寺)에 설치된 군영으로서, 승복을 치의라 하는 데서 연유하여 치영이라 하였다. 이후 승군들은 산성의 수축과 방어에 주력했는데 에 두었던 남한치영과 북한산성에 두었던 북한치영이 대표적인 치영이다. 이들은 산성 방어를 통해 수도의 외곽 수비를 담당하였다.

편제는 처음 그곳에 상주하는 승려로 하였으나 뒤에는 (龍珠寺) 승려를 윤차(輪差)로 임명하는 총섭승·중군승(中軍僧) 각각 1명, 좌·우별장승(左右別將僧), 천총승, 초관승(哨官僧) 등 유료장교승(有料將校僧) 47명과 72명의 유료승을 합하여 372명의 승군으로 조직되었다. 소요경비를 각자 부담하는 폐단이 있어 1756년에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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