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산

최해산

[ 崔海山 ]

요약 조선 전기의 무신. 아버지의 저서 《화약수련법》,《화포법》을 통해 화약 제조 비법을 전수받아 군비를 확장하여 화약과 화기의 발전에 공헌했다.
출생-사망 1380 ~ 1443
본관 영주
활동분야 군사
주요업적 화포개발
시대 조선시대(태종, 세종)

본관은 영주(永州:현재의 永川). 최무선(崔茂宣)의 아들이다. 1395년(태조 4) 아버지의 저서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 《화포법(火砲法)》을 통해 그 비법을 전수받았다. 1401년(태종 즉위) 군기시(軍器寺)에 등용되어 주부(注簿)에 올랐으며, 1408년 경기우도 병선군기점고별감(兵船軍器點考別監) 등을 지내고 1409년 태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차를 만들어 해온정(解慍亭)에서 발사실험을 했다. 

1433년 좌군(左軍節制使) 때 파저강(婆猪江) 야인 정벌에 관한 군기를 이행하지 않은 일로 탄핵을 받았지만 그동안 화포개발에 공헌한 공로가 인정되어 세종의 비호를 받고 용서되었다. 이후에도 세종의 신임이 두터워 제주안무사, 중추원부사, 강계절제사에 이르렀다.

그 동안 화차(火車) ·완구(碗口) ·발화(發火) ·신포(信砲) 등 신화기(新火器)를 창제, 1400년 화약 4근 4냥, 화기 200여 병(柄)이던 것을 18년에는 화약 6,900여 근, 화기 1만 3500여 병, 화포 발사군(火砲發射軍) 1만 여 명으로 군비를 확장하여 화약과 화기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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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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