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혁
[ 崔致爀 ]
- 요약
1846년 가톨릭에 입교했다. 병인박해로 9명의 신부가 순교하자 청나라에 있는 프랑스 제독에게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 청나라에 가는 리델 신부를 수행했다. 그의 노력으로 블랑, 리델, 로베르, 두세 신부 등이 영입되었다.
출생-사망 | 1809 ~ 1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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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일명 선일(善一) 세례명 요한 |
활동분야 | 종교 |
출생지 | 충남 공주(公州) |
1808년 충청남도 공주(公州)에서 출생하였다. 천주교 신자였던 부친에게서 교리를 배웠고 1846년(헌종 12) 다블뤼(Daveluy) 주교에게서 세례를 받고 가톨릭교에 입교했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1866년(고종3) 병인(丙寅)박해 때 9명의 신부가 순교하자 주청(駐淸) 프랑스 제독에게 지원 요청을 위해 청나라에 가는 리델(Ridel, 이복명) 신부를 수행하여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그 해 9월 18일 프랑스함대의 바닷길 안내인이 되어 리델 신부와 함께 동행하였다. 1868년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도굴하는데도 안내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중국에 머물면서 리델 신부를 보좌하였고《한불자전(韓佛字典)》 및 《한어문전(韓語文典)》을 편찬하는데 참여하였다. 1874년 은밀히 귀국하여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입국하여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만주에 있던 리델 신부와 연락하여1876년 백령도(白翎島)에서 블랑 신부 등 두 신부를 영입했으며, 1877년 장연(長淵)에서 조선 교구 제6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리델 주교와 로베르·두세 신부를 영입하는 등 외국인 신부 영입운동을 전개했다. 1878년 북경외방전교회와의 연락을 위해 만주로 가던 밀사가 체포됨으로써 붙잡혀 투옥당했다가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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