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

최유

[ 崔濡 ]

요약 고려시대의 역신. 1350년 동생과 함께 원나라로 도망했다. 공민왕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혜를 세우기로 모의했다. 1364년 1만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으나 이성계 등의 고려군에게 크게 패해 연경으로 도망쳤다. 그 후 탄핵을 받아 고려에 압송되어 사형당했다.
출생-사망 ? ~ 1364
별칭 몽골명 티무르부카
활동분야 정치

몽골명은 티무르부카[帖木兒不花]. 1339년(충숙왕 복위 8) 군부판서(軍簿判書)로 조적의 난 때 왕을 호종, 1342년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1349년(충정왕 즉위)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忠定王)을 원나라에 수행하여 그 공로로 취성군(鷲城君)에 봉해지고 성근익대협찬보정공신(誠勤翊戴協贊保定功臣)의 호를 받았다. 1350년 (參理)가 되었으나 불만을 품고 있다가 체포령이 내린 동생 원(源)과 함께 원나라로 도망했다.

1352년( 1) 정남군(征南軍) 10만을 고려에서 징집하려고 원제(元帝)의 승낙을 얻었으나 원나라에 있던 고려인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354년 고우(高郵)의 (張士誠)을 정벌하려고 징병을 위해 중상감승(中尙監丞)으로서 고려에 오자 그를 회유, 삼사우사(三司右使)에 임명하고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책봉하였다.

다시 원나라에 들어가 기씨(奇氏) 일파를 숙청한 공민왕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奇皇后)를 설득, 공민왕을 폐하고 (德興君) 혜(譓)를 세우기로 모의, 1364년 원병(元兵) 1만을 이끌고 을 건넜으나 이성계(李成桂) 등의 고려군에게 대패, 연경(燕京)으로 도망쳤다. 그후 다시 고려를 정벌하려고 원나라 황제에게 청원했으나 오히려 감찰어사(監察御史) 유련(紐憐) 등의 탄핵을 받고 고려에 압송, 사형되었다.

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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