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진

최세진

[ 崔世珍 ]

요약 조선 전기의 어문학자. 당대 최고의 중국어·운서 연구의 대가였다. 이문(吏文)에도 뛰어나, 사대문서 작성과 사신의 내방에 중요 역할을 했다. 《훈몽자회》를 편찬하고 언문자모를 표기하여 한글의 보급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저서는《사성통해》,《이문집람, 《언해효경》등이 있다.
훈몽자회

훈몽자회

출생-사망 1468 ~ 1542
본관 괴산(槐山)
공서(公瑞)
활동분야 어학
주요저서 《사성통해(四聲通解)》 《이문집람(吏文輯覽)》 《이문속집집람(吏文續集輯覽)》

본관 괴산(槐山). 자 공서(公瑞). (中人)으로서 특전을 받아 1503년(연산군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다. 세조 11년 (1465년) 사역원의 정(正)으로 있던 최발(崔潑)이 부친으로 추정되는 중인 계급의 역관집안에서 태어났다. 역관으로 중국어에 능통했던 최세진은 중국 한자음인 한어음(漢語音)과 우리의 한자음인 동음(東音)을 구별하고 정리하여 한자음을 정비하는 한편, 《훈몽자회》를 편찬하였다. 훈몽자회에 덧붙인 언문자모를 통해 한글 자모의 순서를 정리하고 자모의 명칭을 정하였으며 이두로 신문자 사용법을 설명함으로써 한글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시 중국어 학습 교재로 쓰이던 《노걸대》와 《박통사》를 훈민정음으로 발음을 표기하고 언해함으로써 사역원의 역학서가 정비되었으며 이로 인해 외국어 학습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1517년 내섬시부정(內贍寺副正)으로 참교(參校) ·한학교수(漢學敎授)를 겸하여 《사성통해(四聲通解)》를 완성했고, 1524년(중종19) 군자감정(軍資監正)으로 《친영의주(親迎儀註)》와 《책빈의주(冊嬪儀註)》를 언해(諺解), 1527년 중종 22년에《훈몽자회(訓蒙字會)》를 저술하였으며 . 1530년 중추부사첨지로 《황극경세서집(皇極經世書集)》을 왕에게 진상했고 1539년 승문원제조로 《대유대주의(大儒大奏議)》와 《황극경세서설(皇極經世書說)》을 바쳤으며, 1541년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로 《경성지(京城志)》 《여효경(女孝經)》을 진상하였다.

당대에 가장 뛰어난 중국어 ·(韻書) 연구의 대가였으며, (吏文)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서 사대문서(事大文書) 작성과 사신(使臣)의 내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학문은 실용을 위하는 데 특징이 있었다. 《훈몽자회》 범례에서 한글 자모음(子母音)의 이름을 처음으로 정하고, 순서와 받침 등을 정리하여 국어학 발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중종 37년(1542년) 2월 10일 사망하였다. 벼슬은 동지중추부사까지 이르렀다.
 
주요저서에 《사성통해(四聲通解)》 《이문집람(吏文輯覽)》 《이문속집집람(吏文續集輯覽)》 《노박집람(老朴輯覽)》, 역서에 《효경언해(孝經諺解)》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 등이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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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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