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항
[ 崔錫恒 ]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1684년 정언(正言)으로 이익을 탄핵하다 파직당했다. 이후 재등용되어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정확한 사리판단으로 관찰사 중 제일이라는 평을 들었다. 1721년 소론으로서 신임사화 때 노론을 실각케 하고 우의정에 올랐다. 1723년 《숙종실록》편찬을 주재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는데, 재직 중에 죽었다.
출생-사망 | 1654 ~ 1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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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주(全州) |
자 | 여구(汝久) |
호 | 손와(損窩) ·돈와(遯窩) |
활동분야 | 정치 |
주요저서 | 《손와유고(損窩遺稿)》 |
본관 전주(全州). 자 여구(汝久). 호 손와(損窩) ·돈와(遯窩). 진사로서 1680년(숙종 6)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예문관검열(禮文館檢閱)이 되었다. 1684년 정언(正言)으로 이익(李翊)을 탄핵하다 파직당했다가 재등용되어 경상도 가 되었는데, 몸집이 작은데다 차림새도 늘 초라했으나 사리판단이 정확하여 관찰사 중 제1인물이라는 평을 들었다.
1708년 형조판서, 이어서 이조판서 ·의금부판사(議禁府判事) ·병조판서를 지내고 1721년 좌참찬 때는 (少論)으로서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老論)을 실각케 하고 에 올랐다. 1723년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으로 《숙종실록(肅宗實錄)》 편찬을 주재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는데, 재직 중에 죽었다. 1725년(영조 1) 신임사화의 주모자라 하여 관작을 추탈(追奪)당하였다. 문집에 《손와유고(損窩遺稿)》가 있다. 1908년(순종 2)에 복관되었으며 복관된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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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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