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북

최북

[ 崔北 ]

요약 조선 후기의 화가. 산수화·메추라기를 잘 그렸고 시에도 뛰어났다. 심한 술버릇과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 《수각산수도(水閣山水圖)》, 《한강조어도(寒江釣漁圖)》등이 있다.
출생-사망 1712 ~ 1786?
본관 경주
성기·유용·칠칠이
성재·기암·거기재·삼기재·호생관
별칭 초명 식
활동분야 예술
주요작품 《수각산수도》《한강조어도》《공산무인도》

본관 경주(慶州). 자 성기(聖器)·유용(有用)·칠칠(七七)이. 호 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其齋)·삼기재(三奇齋)·호생관(毫生館). 초명 식(植). 칠칠이라는 자는 이름의 북(北)자를 둘로 나누어 스스로 지은 것이다.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메추라기라고도 하였으며, 에 뛰어나 최산수(崔山水)로도 불렸다. 조선의 대표하는 화가인 (金弘道)·(李寅文)·(金得臣) 등과 친분이 있었다.

1747년(영조 23)에서 1748년 사이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어떤 이가 그림을 그려주지 않는다고 협박을 하자 스스로 눈을 찔러 한 눈이 멀게 되었다. 그래서 항상 반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술을 매우 좋아했는데 술에 취해 그림을 그렸던 일화가 전해진다. 그림을 팔아 가며 전국을 주유하였다. 조선 팔도를 주유 하던중 금강산의 경치에 취해 구룡연(九龍淵)에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친 적도 있다.

심한 술버릇과 기이한 행동으로 점철된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이에 관해서 남공철(南公轍)의 《금릉집 金陵集》과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사 壺山外史》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시에도 뛰어났으며 작품에 《수각산수도(水閣山水圖)》,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 등이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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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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