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프랑스전쟁

청-프랑스전쟁

[ Sino-French War , 淸-戰爭 ]

요약 1884∼1885년에 베트남에 대한 청국의 종주권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청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인도차이나로 진출하기 위한 프랑스베트남을 공격하였는데 프랑스는 1874년 베트남과 사이공 조약을 맺고 베트남의 남부 6성(코친차이나 전역)을 식민지로 할양하도록 하였다. 동시에 베트남을 프랑스의 보호 하에 두도록 하였고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을 때 반드시 프랑스의 허가를 받도록 하였다. 전통적으로 베트남은 청나라의 조공국으로 청나라의 관할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베트남의 프랑스 통치를 통고를 받은 청국은 이를 승인하지 않고 종주국으로서 사이공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더구나 베트남에서도 프랑스의 식민지지배를 배척하는 양이(攘夷)운동이 맹렬하게 일어났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베트남에 프랑스군대를 파견하여 1883∼1884년에 걸쳐 수도 위에와 각지에서 항(抗)프랑스군을 제압하고, 그 동안에 위에(Hue, 順化)에서 2개의 조약을 체결하여 베트남 정부에 프랑스의 보호권을 무력으로 행사하였다. 이에 청나라는 이홍장(李鴻章)에게 이문제를 해결하도록 했으나 주화론자 이자 프랑스에 대해 온건파였던 그는 이를 거부하였다. 한편, 청나라는 베트남 북부에 청나라 군대를 파견하여 중국인으로 편성된 흑기군(黑旗軍)과 연합하여 프랑스에 대한 항전을 계속시켰다. 이때 흑기군은 프랑스군을 격파하여 승기를 쥐고 있었으며 주전론을 펼쳤던 좌종당(左宗棠)이 프랑스에 굴하지말고 일전을 벌여 물리칠 것을 적극 주장하였다.

1884년 8월 5일 프랑스 극동함대는 사령관 쿠베르를 앞세워 타이완지룽[基隆]의 진지를 공격했으며 청나라 군과 격돌하였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 극동함대는 상륙을 실패하였고 많은 피해를 입었다. 프랑스는 청나라에 배상금을 요구하였다가 거절당하자 8월 21일 다시 푸저우[福州] 및 민장[閩江] 연안을 공격하였다. 민장은 청나라 복건성 해군이 주둔하는 곳으로 수군이 운용하는 선박들이 거의 괴멸되었다. 이 전투를 '마강전투(馬江戰鬪)'라고 하며 청나라에서는 이 전투를 통해 근대적인 함대를 구축해야 된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1885년 초에는 프랑스 해군이 닝보[寧波]를 봉쇄하고 펑후군도[澎湖群島]를 점령하는 등 청국 해군을 압도하였다. 당시 청나라에서는 프랑스와 전쟁을 두고 내부에서 일치된 의견을 보지 못하였으며 주화론자와 주전론자 사이에서 혼란을 거듭하였다. 대표적인 주전론자 였던 좌종당의 주장으로 서태후의 결심을 받아내고 마침내 베트남 란손에서 청나라와 프랑스가 격돌하였다. 베트남 북부에서의 지상전에서는 청군의 세력이 대단히 강하였다. 청군과 프랑스군 양측이 란손을 두고 점령과 패퇴를 한번씩 교환하였다. 한편 1885년 3월 청나라 정부는 톈진[天津]에서 프랑스와 강화조약을 체결하였고, 결국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의 보호권을 인정하였다. 청불(淸佛)전쟁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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