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학파

첩학파

[ 帖學派 ]

요약 중국 서파(書派)의 하나.

비학(碑學)에 대립된다. 청(淸)나라의 학자 완원(阮元)의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 및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 이어서 포세신(包世臣)의 《예주쌍접(藝舟雙楫)》의 설(說)을 이어받아, 청나라 말에는 [康有爲]가 《광예주쌍접(廣藝舟雙楫)》을 저작하여 북비를 배우는 사람들의 비학파에 대칭하여 남첩을 배우는 사람들을 첩학파라 불러, 북비를 존중하고 남첩을 배격하였다. 이 설이 나옴으로써 첩학파와 비학파의 특질과 그 대립을 사람들이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첩학의 본뜻은 진(晉)나라의 (王羲之) ·(王獻之) 이래의 전통적 서법을 이어받는 데 있고, 송(宋) ·원(元) ·명(明)나라까지는 다소의 소장(消長)과 신구 서풍의 다른 점은 있으나 대체로 여기에 속한다고 보아도 좋다. 청나라 초에는 여풍(餘風)이 더욱 활발하지만 중기 이후가 되어 (金石學)의 융성에 따라서 새로운 북비가 잇따라 발견되고, 서도의 이론상으로도 비학을 존중하는 경향이 점차 유력해짐에 따라서 첩학은 점차 쇠미해졌다. 청대에 첩학파에서 서(書)를 대성한 사람은 장조(張照:得天)와 유용(劉墉:石庵)을 들 수 있다. 이 파의 입장에서 서를 하고, 학문적인 방면에서 연구의 성과를 올린 사람으로는 손승택(孫承澤) ·양빈(楊賓) ·왕주(王澍) ·옹방강(翁方綱) ·오영광(吳榮光) 등이 있으며, 이들의 저술로 첩학의 특질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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