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

천호

[ 千戶 ]

요약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을 받아 설치한 관직.

만호 ·백호와 더불어 민호(民戶)의 수에 따라 붙여졌다.

1258년(고종 45)에 동북면 지역에서 (趙暉)와 탁청(卓靑)이 에 항복하자 몽골이 탁청에게 처음 임명하였다. 1280년(충렬왕 6)에 제2차 일본정벌을 앞두고 충렬왕이 원나라에 요청하여 박지량(朴之亮) ·나유(羅裕) 등 10명에게 무덕장군(武德將軍) ·관군천호(管軍千戶)를 제수하였다. 다음해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설치하면서 만호와 함께 두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확인되지는 않고,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에 1명을 두었는데, 충숙왕 때 강융(姜融)이 임명된 사실이 보인다. 말에 수군을 재건하면서 만호 아래에 두었고, 1358년(공민왕 7)에 서북면에 만호부를 설치하면서 다시 두었다.

1378년(우왕 4) 전국에 익군(翼軍)체제를 설치하면서 1,000명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4품 관직의 지휘관으로 임명했다가 다음해에 익군 확대조처를 철폐하면서 서북면에만 두었다. 1388년에 수군만호부를 설치했을 때에도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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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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