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후시

책문후시

[ 柵門後市 ]

요약 조선 현종 때부터 조선과 청국 상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만주 책문(柵門:九連城과 鳳凰城의 중간)에서의 뒷장[後市:私貿易·密貿易].

조선시대의 대외무역은 (公貿易)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1660년( 1)부터 조선과 청나라 사신의 왕래가 빈번해지자 책문에서 의주 및 개성상인과 랴오둥[遼東]의 차호(車戶) 간에 사무역(私貿易)이 시작되어 ‘책문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 정부에서는 처음에 이를 단속하였으나, 의 취체관헌인 단련사(團練使)도 이에 가담하여 ‘단련사후시’라는 이름까지 나자 할 수 없이 이를 묵인하고 휴대품에 과세하여 의주부(義州府) 경비로 충당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서 1년에 유출되는 은(銀)이 50∼60만 냥에 이르자 1755년( 30) 책문후시를 공인하고 거래품목을 정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가죽·종이·주(紬)·저포(苧布)·면(綿) 등의 수출이 막대하여 내수(內需)를 위협하게 되자 87년( 11) 폐지하였다. 

책문후시 본문 이미지 1경강상인(강상)개성상인후시만상후시중강개시책문후시회령개시경원개시
[조선후기의 상업과 무역활동]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는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개항(開港)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양국 상인들의 거래품은 조선측의 금·인삼·종이·우피(牛皮)·모물(毛物) 등과 청국측의 비단·당목(唐木)·약재·보석류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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