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하

조영하

[ 趙寧夏 ]

요약 조선 후기 문신. 전권대신이 되어 조·미, 조·영, 조·독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임오군란의 주동자 색출과 대원군의 납치를 실현하여 민씨세력이 재집권하도록 했다.
출생-사망 1845 ~ 1884
본관 풍양
기삼
혜인
시호 충문
활동분야 정치

본관 풍양(豊壤). 자 기삼(箕三). 호 혜인(惠人). 시호 충문(忠文). 조대비(趙大妃:신정왕후)의 조카. 1863년(철종 14)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한 뒤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조대비의 총애를 받아 1865년(고종 2) (大司成)에 특진하였다. 1873년 호조판서 때 (崔益鉉)과 함께 대원군 세력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그해 이 실각하자 다음해 (禁衛大將)이 되고, 훈련대장을 거쳐 1876년 경연지사(經筵知事)·공조판서를 지냈다.

1880년 이조판서가 되고, 그뒤 병조판서를 지내면서 사대당(事大黨)의 실력자가 되었다. 1882년 전권대신이 되어 조·미, 조·영, 조·독 수호통상조약(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하였다. 으로 대원군이 재집권하자 삼군부지사(三軍府知事)에 좌천되었다가 접견대관(接見大官)으로 청나라에 가서 파병을 요청하여 임오군란의 주동자 색출과 대원군의 납치를 실현하여 민씨세력이 재집권하도록 했다.

그해 재차 진주사(陳奏使)로 청나라에 가서 기계·무기 등을 수입하고, 관세·외교의 고문으로 묄렌도르프를 입국하게 하였다. 판리통리아문사무(辦理統理衙門事務)·독판통상사무(督辦通商事務)·도통사(都統使)를 거쳐 1883년(고종 20) 예조판서에 재임되고, (甲申政變) 때 민영목(閔泳穆)·민태호(閔台鎬)와 함께 살해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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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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