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성악연구회
[ 朝鮮聲樂硏究會 ]
- 요약
일제강점기에 한국 전통성악의 공연 및 후진 양성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구분 | 전통성악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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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 1933년 05월 10일 |
설립목적 | 전통성악의 향상 발전, 후진 양성 |
주요활동/업무 | 공연활동, 후진 양성 |
1933년 5월 10일 여성 김초향(金楚香)의 제안으로 송만갑(宋萬甲), 김창룡(金昌龍), 이동백(李東伯), 정정렬(丁貞烈), 한성준(韓成俊) 등 명창들이 중심이 되어 (散調) 명인, 경서도소리 명창, 민속무용수들을 규합하여 판소리, , , 산조, 민속무용, 경서도소리 등 한국 전통음악의 공연과 전수를 목적으로 창립하였다.
참가한 단원은 명인·명창에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김연수(金演洙), 정광수(丁珖秀), 김준섭(金俊 燮), 김초향, 박녹주, 김여란(金如蘭), 임소향(林少香), 김소희(金素嬉), 박초월(朴初月) 등이었고 명(名鼓手)에는 한성준, 김재선(金在先), 정원섭(丁元燮) 등이 있었다.
또 산조 명인에 강태홍(姜太弘), 박종기(朴鐘基), 한주환(韓周煥), 박상근(朴相根), 신쾌동(申快童), 정남희(丁南希) 등이, 가야금병창 명인에는 오태석(吳太石)이 있었다.
사무실은 김종익(金鍾益)의 후원으로 서울 익선동에 마련하였으며, 참가인원은 총 130여 명이었다. 총지휘는 이동백이 맡았으며, 창극의 작곡과 편곡은 정정렬이 담당하고 기획과 사무는 김연승이 맡았다.
1935년에 창극단체를 결성하여 첫 작품으로 서울 동양극장에서 《》을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둔 후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1936년 2월에는 소장파들이 중심이 되어 직속 전용극단 창극좌를 결성, 그해 4월 창단작품으로 《흥보전》을 공연한 후 《》 《》 《》 등을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圓覺社) 이후 주춤했던 전통음악에 대한 활동이 이들에 의해 부흥기를 맞았으나 1936년 말 운영진이 소장파로 넘어가면서 내부 의견 분열로 해산되고 말았다. 이들이 남긴 음반들은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판소리와 창극·민속기악의 보급과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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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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