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석

조사석

[ 趙師錫 ]

요약 조선 후기 문신. 이조정랑을 거쳐 황해 · 강원 · 경기도 등의 관찰사를 역임했다. 1680년 예조판서가 되고, 1687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승진했다. 그때 김만중이 장희빈의 어머니와의 오랜 연문(戀聞)을 왕에게 알렸으나 도리어 김만중이 처벌되었다.
출생-사망 1632 ~ 1693
본관 양주(楊州)
공거(公擧)
만회(晩悔) ·만휴(晩休)
시호 충헌(忠憲)
활동분야 정치

본관 양주(楊州). 자 공거(公擧). 호 만회(晩悔) ·만휴(晩休). 시호 충헌(忠憲). 1660년(현종 1) 진사가 되고, 1662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로 급제, 검열(檢閱) ·(奉敎) ·(正言) ·사서(司書) ·이조정랑을 거쳐 황해 ·강원 ·경기도 등의 를 역임하였다. 1680년(숙종 6) 예조판서가 되고, 1687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승진하였다. 그때 김만중(金萬重)이 장희빈(張禧嬪)의 어머니와의 오랜 연문(戀聞)을 왕에게 알렸으나 도리어 김만중이 처벌되었다.

1688년 좌의정이 되어 그가 동평군(東平君) 항(杭)의 근척(近戚)인데도 동평군을 논하고 처벌받은 박세채(朴世采) ·남구만(南九萬) 등을 변호하여 왕의 노여움을 산 뒤 나가지 않았다. 1689년 돈령부영사(敦寧府領事)에 올랐으나, 1690년(숙종 16) 동궁(東宮) 책봉하례(冊封賀禮)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성(固城)에 유배되어 2년 뒤 배소에서 죽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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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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