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
[ 曹丕 ]
- 요약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220-226). 새로운 관리선발제도인 9품관인법을 시행하는 등 내정 개혁에 힘썼으나 즉위한 지 7년만에 죽어 의도한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당대 문인(文人)으로 명성이 높았고, 문학을 장려했다. 주요 저서에는 《전론》 《위문제집》 등 100여 편이 있다.
출생-사망 | 187 ~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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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자환 |
시호 | 문제 |
국적 | 중국 삼국시대 위(魏) |
활동분야 | 정치 |
주요저서 | 《전론》 《위문제집》 |
자(字)는 자환(子桓), 시호(諡號)는 문제(文帝)로 중국 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曹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유씨(劉氏)씨가 낳은 조앙(曹昻)과 조삭(曹鑠)이 모두 일찍 죽고, 그의 어머니인 변씨(卞氏)가 황후(皇后)가 되어 조조의 적장자(嫡長子)가 되었다. 조조는 원소에 대항한 관도전투에서 승리한 뒤 위공이 되었고, 216년에는 위왕으로 봉해져 사실상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다. 하지만 조조는 220년 뤄양[洛陽]에서 사망했고, 조비가 그 뒤를 이어 후한(後漢)의 헌제(獻帝)에게서 양위받는 형식으로 황제가 되었다.
즉위 후 후한(後漢) 말기부터 계속된 사회 혼란을 극복하고 왕조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내정 개혁에 힘썼다. 진군(陳群)의 건의를 받아들여 새로운 관리선발제도인 9품관인법(九品官人法)을 시행했고, 환관(宦官)을 일정 이상의 관위(官位)에 오르지 못하게 금지하는 등 환관(宦官)과 외척(外戚)의 발호를 막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사로운 형벌과 보복을 금지하는 등 사회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시키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로 얻게 된 병이 악화되자 아들 조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재위 7년만에 죽으면서, 왕조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한편, 조비는 동생인 (曹植)과 함께 문인(文人)으로서도 이름이 높다. 그는 문학을 장려하였으며, 시(詩)와 부(賦)에 능했다. 그가 쓴 시부(詩賦)는 100여 편이 전해지는데, ‘연행가(燕歌行)’는 후대의 칠언시(七言詩) 창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문학평론집인 <전론(典論)>을 편찬했는데, 거기에 수록된 ‘논문(論文)’은 중국에서 가장 오랜 문학이론 비평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오늘날 그의 시는 <위문제집(魏文帝集)> 2권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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