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리

조명리

[ 趙明履 ]

요약 조선 후기 문신. 부제학으로《광묘어제훈사》를 간행하고 그 공으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1750년 도승지로 영흥흑석리 비각을 서사한 공으로 가자가 되고, 1755년 한성부판윤에 승진, 찬집당상으로 《천의소감》을 편찬했다.
출생-사망 1697 ~ 1756
본관 임천(林川)
중례(仲禮) ·원례(元禮)
노강(蘆江)·도천(道川)
시호 문헌(文憲)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도천집(道川集)》,《천의소감(闡義昭鑑)》

본관 임천(林川). 자 중례(仲禮) ·원례(元禮). 호 노강(蘆江) ·도천(道川). 시호 문헌(文憲). 1730년(영조 6) 진사가 되고, 이듬해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로 급제, 1734년 정언(正言)을 거쳐 지평(持平)이 되었다. 이듬해, 앞서 죄인 이태중(李台重)을 에 추천한 사실이 말썽이 되어 삭직, 1737년 교리(校理)에 기용되었으나 그 해 이광좌(李光佐) 일파로 몰려 유배된 뒤 1739년 풀려나와 경기도 심리사(審理使)가 되고, 이듬해 동부승지에 승진하였다.

1747년 으로 《광묘어제훈사(光廟御製訓辭)》를 간행하고 그 공으로 (嘉善大夫)에 올랐다. 1750년 로 영흥흑석리(永興黑石里) 비각을 서사(書寫)한 공으로 가자(加資)되고, 1755년(영조 31) 한성부판윤에 승진, 그 해 찬집당상(纂輯堂上)으로 《천의소감(闡義昭鑑)》을 편찬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으며, 시조 4수가 전한다. 문집에 《도천집(道川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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