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조두순

[ 趙斗淳 ]

요약 조선 후기 문신. 《헌종실록》편찬에 참여하고《동문휘고》찬집당상을 역임했다. 총재관이 되어 삼정의 개혁에 주력하고,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얻어 국정에 참여하였다. 영의정에 올라 삼군부를 부활시켰으며, 경복궁 영건도감의 도제조를 겸하고《대전회통》을 간행했다.
출생-사망 1796 ~ 1870
본관 양주(楊州)
원칠(元七)
심암(心庵)
시호 문헌(文獻)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심암유고(心庵遺稿)》

본관 양주(楊州). 자 원칠(元七). 호 심암(心庵). 시호 문헌(文獻). 1826년(순조 26) 황감제시(黃柑製試)에 장원, 그 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규장각 대교(奎章閣待敎)를 거쳐 1830년 승지를 지내고, 1834년 대사성에 승진, 다음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0년 이조참판 ·황해도관찰사가 되고, 1841년 공조판서에 이어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1848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1849년(철종 즉위) 대제학으로 실록청 도청당상(實錄廳都廳堂上)이 되어 《헌종실록(憲宗實錄)》 편찬에 참여하고, 이듬해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찬(撰)했으며, 1851년(철종 2) 《동문휘고(同文彙考)》 찬집당상(纂輯堂上)을 역임하였다. 뒤에 이조판서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가 되고, 1853년 우의정에 승진, 1858년 좌의정에 올랐으며, 1862년 이정청(釐整廳)의 총재관(摠裁官)이 되어 삼정(三政)의 개혁에 주력하고, 조대비와 의 신임을 얻어 국정에 참여하였다.

1864년(고종 1) 《(哲宗實錄)》 편찬 총재관이 되고, 이듬해 영의정에 올라 삼군부(三軍府)를 부활시켰으며, 경복궁 영건도감(景福宮營建都監)의 도제조(都提調)를 겸하고, 《대전회통(大典會通)》을 간행하였다. 대원군의 명으로 천주교 탄압에 앞장섰으며, 1866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고, 1869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문집에 《심암유고(心庵遺稿)》가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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