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구석

조구석

[ 趙龜錫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하여《인조실록》편찬에 참여했으며 춘추관편수관이 되어서는 《효종실록》편찬에 참여했다. 1663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어 학문을 권장하고 교육에 힘썼다.
출생-사망 1615 ~ 1665
본관 양주(楊州)
우서(禹瑞)
장륙당(藏六堂)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장륙당집》

본관 양주(楊州). 자 우서(禹瑞). 호 장륙당(藏六堂). 정홍명(鄭洪溟)의 문인. 1635년(인조 13) 생원이 되고 능참봉(陵參奉)을 지낸 뒤 1648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을 거쳐 대교(待敎) ·설서(世子待講院說書)를 역임하고, 1649년(효종 즉위) (奉敎)로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직하여 《인조실록(仁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1652년 지평(持平) ·(正言) ·교리(校理) 등을 역임, 1659년 효종이 죽자 사간(司諫)으로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어 《효종실록(孝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이듬해 집의(執義)로 재직 중 수덕행정십일조(修德行政十一條)를 올렸다가 종척(宗戚)의 미움을 받아 양주목사(楊州牧使)로 나갔다. 1663년(현종 4)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학문을 권장하고 교육에 험썼으나 이듬해 전라도에 흉년이 들어 기민(飢民)이 속출하자 농작실태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는 죄로 파직되었다. 문집에 《장륙당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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