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정호

[ 鄭澔 ]

요약 조선 후기 문신.《숙종실록》 편찬에 참여하다가 신임사화로 유배되었다. 1725년 풀려나와 우의정이 되고, 사화로 사사된 노론 4대신의 신원을 상소했으며,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일생을 노론의 선봉으로 활약하였고, 글씨와 시문에 뛰어났다.
출생-사망 1648 ~ 1736
본관 연일(延日)
중순(仲淳)
장암(丈巖)
시호 문경(文敬)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장암집》,《문의통고(文義通攷)》

본관 연일(延日). 자 중순(仲淳). 호 장암(丈巖). 시호 문경(文敬). 감찰 경연(慶演)의 아들. 1682년(숙종 8) 생원이 되고, 1684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 ·정언(正言)을 역임하고,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파직되어 경성(鏡城)에 유배되었다. 1694년(숙종 20) 풀려나와 지평(持平) ·수찬(修撰) ·교리(校理)를 거쳐 1698년 집의(執義) ·사간(司諫) 등을 지냈다.

이듬해 동래부사가 되었으나 신은(新銀) 12만 냥의 취급 부주의로 파직되었다가 광주부윤(廣州府尹)에 기용, 1702년 동부승지 ·대사성을 거쳐 1704년 함경도관찰사를 지냈다. 도승지 ·부제학을 거쳐 1713년 대사성에 재임중 송시열(宋時烈)의 묘정(廟庭) 배향을 제의하고, 1715년 부제학으로 《가례원류(家禮源流)》의 발문에서 윤증(尹拯)을 공박하여 파직되었다.

이듬해 대사헌이 되고, 윤선거(尹宣擧) 부자의 관작을 추탈하게 하였으며, 1717년(숙종 43) 세자의 대리청정을 시행하게 하고, 다음해 이조판서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으로 《숙종실록(肅宗實錄)》 편찬에 참여하다가 신임사화(辛壬士禍)로 강진(康津)에 유배되었다. 1725년(영조 1) 풀려나와 우의정이 되고, 사화로 사사된 노론 4대신의 신원을 상소했으며,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1729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었고,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로 치사(致仕)하였다. 일생을 노론의 선봉으로 활약하였고, 글씨와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충주의 누암서원(樓巖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장암집》, 편저에 《문의통고(文義通攷)》가 있다.

카테고리

  • > > >
  • > > >
  • > > >

관련동영상

괴산 정호 묘소 괴산군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정호의 무덤 충청북도 기념물 제141호 괴산군 불정면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정호 선생의 무덤으로 봉분 앞에는 상석, 묘비, 망주석이 조성되어 있으며 전체 규모는 크지 않다. 봉분의 높이는 200cm, 지름 650m 이며 봉분 오른편에 있는 묘비는 크기가 가로 57cm, 높이 152cm, 두께 26.5cm 정도이다. 문경공 장암 정호는 정치가이자 학자로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었으며 1689년 을사환국으로 파직되어 문외출송되었다가 경성에 유배되기도 하였으나 갑술옥사로 재등용되어 이후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선생의 무덤을 중심으로 위로는 할아버지(직)의 묘소가 있고 아래로는 장남 희하의 묘소가 있으며 각각의 묘소에는 묘비와 상석, 촛대석 등이 설치되어 있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