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제

정태제

[ 鄭泰齊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검열·이조정랑을 거쳐 1645년 정조사 때 청나라에 가서 봉림대군의 귀환을 약속받고 돌아와 밀양부사가 되었다. 저서에 《국당배어》와 한문 소설 《천군연의》가 있다.
출생-사망 1612 ~ 1669
본관 동래(東萊)
동망(東望)
국당(菊堂)·삼당(三堂)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국당배어(菊堂俳語)》, 《천군연의(天君衍義)》

본관 동래(東萊), 자 동망(東望), 호 국당(菊堂)·삼당(三堂)이며, 이조좌랑 정양우(鄭良佑)의 아들,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사위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檢閱)·이조정랑(吏曹正郞)을 거쳐 1645년 (正朝使)로 청나라에 가서 봉림대군(鳳林大君)의 귀환을 약속받았으며 돌아와 밀양부사(密陽府使)가 되었다.

다음 해 공청감사(公淸監司) 임담(林机)과 유탁(柳濯)의 모반사건에 관련되어 유배되었다. 효종의 즉위 후 풀려나와 삼사(三司)의 벼슬을 거쳐 이조참의를 지내고 승지에 이르렀으며 1659년(현종 1) 송시열(宋時烈)의 후원으로 동래부사로 나갔다. 동래부사 재직시 탄핵으로 1661년(현종 2)에 영해부(寧海府) 충군(充軍)에 처해졌다가 다시 유배되어 말년에는 거의 14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저서에 《국당배어(菊堂俳語)》와 한문소설 《천군연의(天君衍義)》가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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