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후

정극후

[ 鄭克後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학문은 스승 장현광과 정구가 감탄할 정도로 비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60세가 될 때까지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 삼성산 기슭에 집을 짓고 자연과 벗하면서 후진 교육에 힘썼다. 저서에《문묘사향지》등이 있다.
출생-사망 1577 ~ 1658
본관 영일(迎日)
효익(孝翼)
쌍봉(雙峯)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문묘사향지(文廟祀享志)》,《역년통고(曆年通攷)》

본관 영일(迎日). 효익(孝翼). 쌍봉(雙峯). 장현광(張顯光) ·정구(鄭逑)의 문하생. 그의 학문은 스승 장현광과 정구가 감탄할 정도로 비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60세가 될 때까지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 1634년(인조 12)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1636년 선릉참봉이 되었고, 1637년 금정도(金井道) 찰방에 임명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43년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어 몇 달 근무하다가 노환으로 사직하고, 삼성산(三聖山) 기슭에 집을 짓고 자연과 벗하면서 후진교육에 힘썼다. 저서에 《문묘사향지(文廟祀享志)》 《역년통고(曆年通攷)》 《서악지(西岳志)》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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