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평야

재령평야

[ 載寧平野 ]

요약 황남 재령군 ·안악군 일대 재령강 유역의 평야.

나무리[南勿里]벌 또는 극성(棘城)평야라고도 한다. 재령평야는 원래 멸악(滅惡) ·구월(九月)산맥 및 황주(黃州)준평원 사이의 함몰부, 즉 고재령만(古載寧灣)이 황해안 일대의 융기와 재령강 및 지류인 서흥강(西興江) ·은파천(銀波川) ·서강(西江) 등에 의한 퇴적으로 육지가 된 전형적인 충적평야이다. 재령평야의 생성과정은, 사리원(沙里院) 북쪽에 있는 해식동의 흔적, 약 550년 전에 호수(海跡湖) 밑에서 솟아나온 신천온천(信川溫泉)이 홍수로 매몰된 것을 지금부터 약 200년 전에 다시 파냈다는 옛 기록과 평야 동쪽의 해주선(海州線)과 장연선(長淵線) 분기점인 상해(上海)는 고대에 한인(漢人)들의 상륙지였기 때문에 상해라고 불렀다고 구비전설 등은 말해준다. 그러나 육지화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어서, 평야 주변의 구릉지에 산재하는 고구려의 고분, 대방군(帶方郡)의 성터, 기타 유적으로 보아 약 1000년 전까지도 평야부는 큰 만(灣)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또 신천온천에 관한 기록으로 보아 약 550년 전에는 육지화가 크게 진척되어 옛 재령만은 담수의 석호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재령평야는 해발고도 20 m가 넘는 곳이 드물고, 남률면(南栗面) 일부는 만조 때에는 해면하 3 m에 놓인다.

재령평야 본문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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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仁祖) 때 김자점(金子點)에 의해 어지둔보(於之屯洑) ·경우궁보(景祐宮洑) 축조의 공사가 완성됨으로써 재령평야는 한국 유수의 미작지대가 되어 진상미(進上米)로 널리 알려진 양질의 쌀을 산출하였다. 쌀 외에 조 ·밀 ·콩류 ·면화 ·잎담배 등 밭작물이 재배되어 왔고, 활발한 원예농업으로 사과 ·배 ·복숭아 ·참외 등의 산출도 많다. 한편 평야 서연부(西緣部) 구월산 기슭에는 단층선을 따르는 온천대가 형성되어 신천 ·삼천(三泉) ·달천(達川) ·안악(安岳) 등지에 온천이 있으며, 또 주변에 구월산 ·수양산(首陽山) ·장수산(長壽山) ·정방산(正方山) 등의 산과 한사군(漢四郡) ·고구려의 고분 등 유적이 많아 휴양 ·관광지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