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적 수고본 일괄

이언적 수고본 일괄

[ Manuscripts of Yi Eon-jeok , 李彦迪 手稿本 一括 ]

요약 조선 중기에 활동한 이언적이 쓴 두 종류의 책으로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과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이 있다. 1975년 5월 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언적 수고본 일괄-속대학혹문

이언적 수고본 일괄-속대학혹문

지정종목 보물
지정일 1975년 5월 1일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시대 조선 명종 2∼8년(1547∼1553)
종류/분류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사본류
크기 5종 13책

《속대학혹문》은 중국 송대 주희(朱熹, 1130~1200)가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언급하지 않은 항목을 이언적이 추가로 논술한 경학 연구서이다.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는 주희의 《대학장구》에 이언적 자신의 연구 성과를 추가한 경학 연구서이다.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1514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사헌부장령·밀양부사를 거쳐 1530년 사간(司諫)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이언적은 김안로(金安老, 1481~1537)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후 경주의 자옥산에 은거하며 성리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1537년 김안로 일당이 몰락하자 이언적은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홍문관 교리 및 직제학을 거쳐 이조·예조·형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547년 윤원형(尹元衡, 1503~1565) 일당에 의하여 정미사화(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평안도 강계에 유배되었다. 여기서 이언적은 많은 저술을 남기게 되는데 《속대학혹문》과 《대학장구보유》도 이 시기인 1547년에서 1553년 사이에 저술된 것이다.

내용과 구성

《속대학혹문》은 주희가 《대학(大學)》을 주해한 연구서인 《대학혹문》에 이언적이 다시 추가로 논술을 덧붙인 성과이다. 주희의 책과 마찬가지로 전편이 문답 형식으로 《대학장구》와 차서(次序) 및 해석을 다르게 한 까닭을 6개조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이 책은 정조(正祖) 대에 왕실 경연에서 강의되면서 정조가 친필로 ‘제선정회재속대학혹문권수(題生正晦齋續大學或問卷首)’라는 제목의 머리글을 써서 내려 보냈다. 크기는 가로 23.5㎝, 세로 32.3㎝이며 1책 필사본이다.

《대학장구보유》는 1책 필사본이다. 이언적이 주희가 저술한 《대학장구》에서 미비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보충하였으며, 일부 주희와 다른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전문이 이언적의 친필이며 권말에 노수신(盧守愼)의 발문이 있다.

가치 및 의의

본 유물은 이언적의 친필 원고로서 조선 중기의 예학 및 경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주자학을 조선에서 어떻게 자기화하면서 발전시켰는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한국 경학사 논의에 있어 중요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역참조항목

경주 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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