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원소

[ element , 元素 ]

요약 원자번호에 의해서 구별되는 한 종류만의 원자(原子)로 만들어진 물질 및 그 홑원소물질의 구성요소.

그 종류는 원자번호의 존재 가능한 수치의 수만큼이다. 현재까지 지구상에 100종 이상이 인정되어 있으며, 특히 화학원소(化學元素)라고 하여 다른 용어와 구별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순수물질로서 어떠한 방법에 의해서도 두 종류 이상의 물질로 쪼갤 수 없고, 또한 어떠한 둘 이상의 물질의 화합(化合)에 의해서도 그 순수물질을 만들 수 없을 때, 그 순수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종(種)을 원소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원자의 인공변환(人工變換), 또는 많은 종류의 동위원소의 발견으로 이 정의는 애매하게 되었다. 더구나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단위의 입자로서의 원자를 생각하게 되고, 원자가 갖는 속성에 주목할 때에 원소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 뒤부터는 원자번호가 원소의 성질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되었다.

또한 한 종류의 원소의 원자로 된 물질을 홑원소물질이라고 하며 화합물과 구별하여 홑원소물질을 원소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정확하게는 구별해야 한다. 즉, 홑원소물질은 기술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이지만, 그 성분인 원소를 인식하는 것은 사고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홑원소물질은 한 종류의 성분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성분이 바로 원소인 것이다.

원소의 개념

원소의 개념이 나타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며, 고대 중국·인도·이집트·그리스 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 개념은 모두 고대 철학자들의 단순한 사고의 소산에 불과했으며, 오늘날의 개념과는 어느 정도의 공통점은 있으나 실험적인 근거가 없는, 본질적으로는 다른 것이었다. 즉, 원소란 물질을 만들고 있는 근본 재료로서, 신(神)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작용하며 변화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인 것이라고 했다.

⑴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그 근원적 물질로서 BC 7세기경에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이 나타났으며, 그리스의 탈레스는 물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헤시오도스는 흙을 생각하였다.

⑵ 사원론(四元論):그 뒤 여러 가지 이원론·사원론 등이 나와 논의가 있었다. 예를 들면, BC 5세기 중엽 그리스의 엠페토클레스는 이들 네 종류의 일원론을 통일하여 물·공기·불·흙을 만물의 기본이 되는 원소라고 했으며, 이들은 기체·액체 또는 고체 등의 상태를 대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량·건(乾)·습(濕)·냉(冷)·열(熱) 및 그밖의 성질도 가지고 있으며, 네 종의 원소가 서로 혼합·분리함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⑶ 인도·중국:그보다 앞서 BC 7세기~BC 6세기에 나타났던 인도의 사대설(四大說:地·水·火·風)도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며, BC 6세기 초에 석가모니는 이 사대에 공(空)을 추가하여 오대(五大)로 했다. 중국의 오행설(五行說:火·木·土·金·水)도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이 생각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종합되었고 중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믿어져왔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에 제5원을 추가하고, 이 제5원이야말로 세계를 만드는 유일한 근원재료인 제일물질(第一物質)이며 현실로는 그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가능적인 존재이고, 여기에 건·습·냉·온의 네 가지 성질이 가해져서 화·수·풍·토의 4원소가 되고 이것이 여러 방법으로 혼합하여 세계를 이룬다고 했다. 이 시대에는 벌써 금·은·구리·철·납·주석·수은 등 현재 원소로 알려져 있는 것들이 발견되었고, 탄소와 황의 두 종의 물질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으므로 그 인식방법은 현재와 크게 벌어져 있었다.

연금술사: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설에 대한 반대의견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지만, 실험적 사실을 많이 알고 있던 연금술사들은 4원소보다는 현실적인 물질을 원소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자비르 이븐 하이얀은 수은·황·식염을 3원으로 생각했다. 이들 가운데 수은과 황은 현재에도 원소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 생각은 근대적인 의식방법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아직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고, 현재 원소로 되어 있는 인·비소·안티몬·비스무트·아연 등도 원소로 인식되지 못하고 빠져 있었다.

근대의 원소관

원소의 개념에 과학적인 검토가 가해지게 된 것은 17세기부터이며, 근대적인 원소관을 이룩한 것은 영국의 R.보일이다.

⑴ 보일의 주장: 로버트 보일은 처음으로 원소를 정하는 데는 추상적인 방법에 의하지 말고 실험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661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회의적(懷疑的)인 화학자》에서 “물질은 화합물·혼합물 할 것 없이 모두 분석해가면, 그 이상 간단히 할 수 없는 물질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원소라고 부른다”고 했다. 고대 철학자들이나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단지 추상적 추리만으로 원소를 취급하고 원소의 연유를 밝히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근대적 원소관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정의는 원소를 홑원소물질과 꼭 같은 뜻으로 취급했다는 점에 문제가 있었다.

⑵ 원소의 발견:1 7~18세기에는 여러 가지 실험결과로부터 물질불멸(物質不滅)의 법칙이 발견되어 물질변화에 대한 질과 양의 검토가 정밀하게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A.L.라부아지에가 플로지스톤설(說)을 완전히 부정하는 데 성공하여 산소를 원소라고 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나, 이것과 전후해서 공기(空氣)와 연소(燃燒)의 연구로부터 수소나 질소와 같은 기체의 원소가 발견된 것은 화학을 근대화로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무렵에 벌써 니켈·코발트·망간을 비롯한 각종 중금속, 그리고 니오브·탄탈·오스뮴 등의 백금족 원소, 카드뮴·리튬과 같은 희유원소(稀有元素), 또는 바닷물에서 얻은 염소·브롬·요오드와 같은 원소도 알려지게 되어 기지 원소로서 약 30종이나 헤아리게 되었다. 그 뒤에도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원소가 더 많이 발견되었으나, 이것은 존 돌턴의 원자설(原子說)에 의하여 원소관이 더욱 명백해지고, 원소의 질적인 특성에 대응하는 것으로 원자의 양적인 규정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원소관은 더 진보되었다. 즉, 지금까지 화학적 수단으로는 미치지 못했던 원소에 대해서도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전기분해(電氣分解)가 19세기 전반에, 다시 분광분석법(分光分析法)이 19세기 후반에, 이어 20세기 초에는 원소의 본질을 파고드는 X선분석에 의한 확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견된 원소도 80종을 넘게 되고 그것을 주기율표에 정리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고, 원소가 갖는 본성도 차차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방사성원소의 발견으로부터 인공원소(人工元素)의 제조 및 동위원소의 발견에 이르러, 불생불멸이야말로 원소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했던 생각과 같은 원소의 원자는 모두 동일하다는 생각이 완전히 부정되고 말았다. 즉, 원소란 같은 종류의 원자가 가지는 속성에 대한 개념이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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