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문예부흥

아일랜드문예부흥

[ Irish literary renaissance , ─文藝復興 ]

요약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문예운동.

스코틀랜드웨일스의 문예운동을 포함하여 ‘켈트문예부흥’이라고 할 경우도 있다. 이 운동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유럽에 퍼졌던 낭만주의 사상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아일랜드의 민족의식이 눈뜨고 영국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요구한 민족적 충동이 문학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1885∼1895년 사이에 런던에서 적극적인 문학운동으로 나타났다가, 후에 활동무대를 더블린으로 옮겼다. 당초의 지도자는 G.더피, 더글러스 하이드 등이었는데, 이들은 영국으로부터의 문학적 자립을 위해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운동으로서 결실시킨 대표적 작가는 예이츠와 J.M.싱이다. 신비적 낭만주의자로서 출발한 예이츠는 1891년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런던에서 만들었고, 다음해에는 이 협회를 더블린에도 만들어, 조국의 문예부흥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899년에는 그레고리 부인과 협력하여 더블린 ‘아일랜드 문예극단’을 창립하고, 아일랜드 전설에서 취재한 《캔서린 백작부인》을 집필 ·상연하였다. 1904년에는 ‘애비극장’을 설립, 연극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때 싱은 예이츠의 영향을 받아 알란섬의 구전(口傳)과 전설을 연구한 후, 극작가로서 아일랜드 연극에 근대적 사실주의를 도입하였다. 《바다로 달려가는 사람들》 등 5편의 걸작이 애비 극장에서 상연되어 근대 연극사상 불멸의 명성을 떨쳤다. 또한 오케이시도 훌륭한 희곡을 써 더블린의 빈민들에게 애국적 정열을 주입하였다. 이 밖에 단세니, 에드워드 마틴, 패트릭 콜럼 등의 극작가가 활동하였고, 연극이 이 문학활동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시(詩)에 있어서는 예이츠 외에 라이오넬 존슨, 조지 러셀(AE가 필명), 제임스 스티븐슨 등이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조이스는 세계문학적인 시야에서 이 민족적 운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였으나, 실상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게일어(語)의 구제, 고대 아일랜드 전설과 민화(民話)의 회복, 민족감정의 고양 등을 지향한 이들의 문학정신은 단순히 국지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세계문학의 전개에도 커다란 시사(示唆)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