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경

심수경

[ 沈守慶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좌의정을 지냈다.
출생-사망 1516 ~ 1599
본관 풍산(豊山)
희안(希安)
청천당(聽天堂)
주요저서 《청천당시집》 《청천당유한록》 등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희안(希安), 호는 청천당(聽天堂)이다. 아버지는 심사손(沈思遜)이며, 어머니는 참의 이예장(李禮長)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후 호당을 거쳐 1550년(명종 5) 이조좌랑 겸 춘추기사관으로 있을 때 중종실록과 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2년에는 검상(檢詳)에 임명되었고, 홍문관 직제학을 지냈다. 1562년 경기도 관찰사로 있을 때 중종의 능을 천장(遷葬)하게 되자 대여(大輿)가 한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선창을 설치하지 않은 죄로 파직되었다. 후에 복직되어 대사헌, 대사성, 팔도 관찰사를 두루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1583년에는 병조판서를 지냈고, 1590년 우의정에, 그리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도체찰사가 되어 의병모집에 힘썼고, 좌의정을 거쳐 1598년 나이가 80이 되어 영중추부사를 끝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나 금천에서 생을 마쳤다. 중종 조 많은 선비들이 죽음을 당한 기묘사화 때 중심 인물이었던 심정(沈貞)의 손자로 늘 선대의 허물을 알고 부끄러워하며 몸가짐을 삼가하였기 때문에 청현직을 두루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청천당시집》과 《청천당유한록》이 있다.

참조항목

심사손, 심정

역참조항목

견한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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