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개척민

시베리아개척민

[ ─開拓民 ]

요약 한말 시베리아에 가서 토지를 개척한 함경도 지방의 이주민.

시베리아는 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정부의 월경(越境)금지조치로 국경을 넘지 못하다가 1864년(고종 1) 대흉년이 들자 최운실(崔雲實)·양응범(梁應範) 등이 두만강을 건너 이르쿠츠크에 이주하여 토지를 개척, 생활의 기반을 잡게 되었다. 이 소식이 월경의 기회를 노리던 많은 세궁민(細窮民)에게 전해져, 1869년 갑산(甲山)·삼수(三水) 등지의 빈민들이 대규모로 국경을 넘어가 최운실의 도움으로 추풍(秋風)에 정착하여 개간을 시작하였다. 1870년 다시 96명이 시베리아로 넘어갔고, 1871년 70세대 415명이 이주하였으며, 수년 후에 모스크바로 유학생도 보내게 되었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 개척은 비교적 순조로워 1874년 25명이 이주하여 초가집 다섯 채를 짓고 개척리라 하였는데 l년이 채 못 되어 신한촌(新韓村)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고, 학교와 교회도 건립하였다.

1875년 안병국(安炳國)·김동삼(金東三) 등은 나선촌(羅鮮村)을 개척하였으며 1884년(고종 21) 김석우(金錫雨)·김정련(金正連)은 남석촌(南石村)을 개척하는 등 시베리아의 미개척지를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1884년 6월 체결된 경흥개척조약(慶興開拓條約)으로 자유로운 입주가 허용되었다.

역참조항목

이르쿠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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