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무공신

소무공신

[ 昭武功臣 ]

요약 조선 인조 때 강원도 횡성에서 일어난 이인거(李仁居)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勳號).

횡성에 은거한 전 익찬(翊贊) 이인거는 정묘호란에 따른 후금과의 화친을 반대하고, 인조반정의 공신이 정사를 그르친다 하여 1627년(인조 5) 고계립(高啓立)·고대립(高大立) 등과 함께 횡성에서 군사 70여 명을 일으키고, 인근의 군사를 모아 서울로 진격, 반정공신을 몰아내고 후금을 치려 하였다. 그러나 원주목사 홍보(洪寶)에 의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참수되었다. 이때 고변과 진압에 공을 세운 원주목사 홍보와 횡성현감 이탁남(李擢男), 횡성 유학 진극일(陳克一) 등 6명을 3등으로 나누어 소무공신으로 책록하였다.

1등 홍보는 수충분의결책청난소무공신(輸忠奮義決策淸難昭武功臣), 2등 이탁남·원극함(元克咸)은 수충분의청난소무공신(輸忠奮義淸難昭武功臣), 3등 진극일·이윤남(李胤男)·신경영(辛慶英)은 수충분의소무공신(輸忠奮義昭武功臣)에 책록되었다. 이인거의 난은 후금과의 전쟁 이후 혼란해진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정국 주도세력이 전란 뒤의 민심수습 차원에서 처리한 사건이었으므로, 이 공신도 이후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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