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격서

소격서

[ 昭格署 ]

요약 조선시대에 도교(道敎)의 보존과 도교 의식(儀式)을 위하여 설치한 예조(禮曹)의 속아문(屬衙門).

도교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구상화(具像化)한 상청(上淸)·태청(太淸)·옥청(玉淸) 등을 위하여 삼청동(三淸洞)에 성제단(星祭壇)을 설치하고 초제(醮祭) 지내는 일을 맡아보았다. 태종 이전에는 소격전(昭格殿)이라 하여 하늘과 별자리, 산천에 복을 빌고 병을 고치게 하며 비를 내리게 기원하는 국가의 제사를 맡았는데, 1466년(세조 12) 관제개편 때 소격서로 개칭하였다.

관원으로는 영(令:종5품) 1명, 별제(別提:정6품) 2명, 참봉(종9품) 2명과 잡직(雜職)으로 15명의 도류(道流)를 두었다. 도류는 도사(道士)라고도 하며 4품으로 거관(去官)되었는데, 이들은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얻은 사람 중에서 선발되었다.

그후 도교를 배척하는 유신(儒臣)들의 조직적인 운동과 조광조(趙光祖)의 끈질긴 폐지 주장에 따라 1518년(중종 13)에 폐지되었고, 이때 제복(祭服)·제기(祭器)·신위(神位)까지 땅에 파묻었다. 1525년 복설(復設)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뒤 다시 폐지되었다. 소격서는 후한(後漢) 말 장릉(張陵)이 발전시킨 도교가 고려에 전래되어 예종이 도교의 기도 대상인 천존상(天尊像)을 옥촉정(玉燭亭)에 모셔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처음에는 신격전(神格殿)이라 하였다.

삼청동의 제단에는 삼청전(三淸殿)·태일전(太一殿)·직숙전(直宿殿)·십일요전(十一曜殿)을 두어 영험(靈驗)에 따라 각 전에서 초제(醮祭)를 지냈는데, 삼청전에서는 옥황상제·태상노군(太上老君)·보화천존(普化天尊) 등 남자상(男子像)을 모셨고, 태일전에는 여자상을 모셔 칠성제수(七星諸宿)를 제사하였으며 그 밖의 전(殿)에서는 사해용왕(四海龍王)·명부십왕(冥府十王) 등을 제사하였다.

여기에 딸린 도류들은 백의(白衣)와 오건(烏巾)을 착용하여 영보경(靈寶經) 등 경문(經文)을 외우며 치성을 드렸는데, 축원하는 글을 푸른 종이에 써서 불사르는 등 의식의 절차는 엄숙하고 복잡하였다.

참조항목

기묘자, 예조, 전근랑

카테고리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