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르 테메레르

샤를 르 테메레르

요약 중세 말기에 프랑스 왕권에 대항하였던 무인. 독립귀족의 연합체인 ‘공익동맹’을 조직하여 리에지 반란을 역용하여 왕을 굴복시키려 했다. 에드워드 4세에게 프랑스 왕관을 주기로 약속하여 백년전쟁을 재연시켰으나 영국군이 패했다.
원어명 Charles le Téméraire
출생-사망 1433.11.10 ~ 1477.1.5
별칭 호담공
국적 프랑스

당시 국내 통일을 추진하던 프랑스왕 루이 11세의 절대체제화에 반항하였으므로, 호담공(豪膽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부르고뉴공(公) 필립 르 본의 아들로서 디종에서 태어났으며, 샤롤레이백작을 거쳐 1467년 부르고뉴공이 되었다. 그는 독립귀족의 연합체인 ‘공익동맹(公益同盟)’을 조직하여 1464년 파리를 포위하고, 리에지 반란을 역용하여 왕을 굴복시키려 하였으며(1467), 1468년 왕을 포로로 잡아 자기의 권익을 인정시켰다.

부르고뉴를 중심으로 플랑드르, 로렌 등 주변지역에 세력을 확대하고 프랑스에서 독립된 왕국 건설을 꿈꾸던 그는, 영국 요크가(家)의 에드워드 4세의 여동생인 마가렛과 결혼하였다(1468). 그리고 에드워드 4세에게 프랑스 왕관을 주기로 약속하여 백년전쟁을 재연시켰으나, 영국군의 패배로 끝났다(1475). 한편 몸값을 주고 자유를 찾은 루이 11세가 스위스와 알자스, 로렌 등 제후의 협력을 얻어 쳐들어오자, 그도 로렌공과 싸우다가 낭시 교외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외딸 마리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였으므로, 그가 죽은 뒤 플랑드르는 합스부르크가의 소유가 되었다.

역참조항목

모라전투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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