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금서당

벽금서당

[ 碧衿誓幢 ]

요약 통일신라시대 9서당(九誓幢)의 하나.

통일신라시대 국가적 단결과 민족적 융합을 꾀하기 위해, 백제·고구려 잔민과 말갈족을 포함하여 조직한 수도방비군인 9서당의 하나이다. 9서당은 왕권수호를 위한 수도방비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통일전쟁과정에서 이민족에 대한 관용의 의미로 확대되었으나 전제왕권이 확립된 이후에는 반발하는 귀하인에 대한 억압과 통제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벽금서당은 686년(신문왕 6)에 적금서당(赤衿誓幢)과 함께 보덕성(報德城 : 전북 익산 소재)의 고구려 유민으로 구성되었다. 고구려 멸망후 신라에 의해
보덕국(報德國)의 왕에 봉해진 부흥운동군의 수령 안승(安勝)의 족자(族子)인 대문(大文)이 684년 금마저(金馬渚)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신라는 난을 평정하고 그들에 대한 억압과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벽금서당을 세웠다.

소속군관으로는 최고지휘관인 장군 2명, 대관대감(大官大監) 4명, 대대감(隊大監) 5명(보병 지휘자 2명, 기병 지휘자 3명), 제감(第監) 4명, 감사지(監舍知) 1명, 소감(小監) 23명(소감 13명, 보병 지휘자 4명, 기병 지휘자 6명), 대척(大尺) 23명(대척 13명, 보병 지휘자 4명, 기병 지휘자 6명), 군사당주(軍師幢主) 1명, 대장척당주(大匠尺幢主) 1명, 보기당주(步騎幢主) 4명, 착금기당주(著衿騎幢主) 18명, 흑의장창말보당주(黑衣長槍末步幢主) 20명, 군사감(軍師監) 2명, 대장대감(大匠大監) 1명, 보기감(步騎監) 4명, 착금감(著衿監) 18명을 두었다. 옷깃은 벽황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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