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자

배정자

[ 裵貞子 ]

요약 친일(親日) 민족반역자.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간첩교육을 받고 귀국, 일본의 한국병탄 성취에 큰 역할을 했다. 국권피탈 뒤 민족탄압을 도왔고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 때 군사 스파이로 암약하고 만주·중국 본토 등에서 독립투사 체포에 앞잡이 노릇을 했다.
출생-사망 1870 ~ 1951
본관 김해
별칭 초명 분남
활동분야 반민족행위

본관 김해. 초명 분남(粉南). 민씨 일파에 의해 아버지가 처형된 뒤, 죄적(罪籍)에 올라 어머니를 따라 각지를 유랑하다가, 1882년 여승(女僧)이 되었다. 3년간 수도생활을 하다가, 1885년 아버지의 친구인 밀양부사 정병하(鄭秉夏)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도피하여 망명 중인 안경수(安駉  壽)·김옥균(金玉均) 등에게 의탁하다가, 1887년 이토 히로부미[伊蕂 博文]의 양녀가 되었다. 그뒤 이토 히로부미의 죽은 딸(장녀)의 이름을 붙혀 사다코[貞子]로 개명하고 철저한 간첩교육을 받은 뒤 1894년 귀국, 고종에게 접근하여 일제(日帝) 침략의 앞잡이로서 일본의 한국병탄을 성취하기 위해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국권피탈 뒤에는 일본군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의 주구(走狗)로서 민족탄압을 도왔고, 1920년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出兵) 때 봉천(奉天) 총영사관(總領事館)의 촉탁으로 있으면서 군사 스파이로 암약하였으며, 특히 마적단(馬賊團)의 포섭에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그뒤 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 쓰루기치[丸山鶴吉]의 지령으로 만주·중국 본토 등에서 독립투사들의 체포에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반민특위(反民特委)에 의해 체포되었다.

역참조항목

정병하, 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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