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흐

발흐

[ Balkh ]

요약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고도(古都).

예로부터 서(西)투르키스탄의 중심도시로 고대에는 에크바타나, 니네베, 바빌론 등과 상업적으로 경쟁하였다. 또한 예로부터 조로아스터교(敎)의 중심지였으며, 그 개조(開祖) 조로아스터(BC 6세기경)가 발흐성 내에서 영면하였다고 전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재위 BC 336∼BC 23)의 동정(東征) 이후 그리스 식민의 도시국가가 되어 박트리아라고 불렀다. 한(漢)나라의 장건(張騫)은 이 지방을 대하(大夏)라 하였고, 7세기 당(唐)나라의 현장(玄奘)도 이곳에 왔으며 그의《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는 이 나라를 박갈국(縛喝國)이라 부르고 승려가 무려 3,000명이 넘는 불교 융성지(隆盛地)로 기술하였다.

10세기 아라비아의 여행가 이븐 하우칼은 발흐의 넓이는 반 파라상(parasang:약 2.4㎢)으로 6개의 성문·성벽이 있고 도시의 중앙에는 성채와 회교사원이 있으며 집은 점토로 지어졌다고 기술하였다. 12세기의 지리학자 이드리시는 이 도시에 많은 이슬람 신학교가 있고 상업·교역이 활발했다고 전하였다. 1221년 칭기즈칸은 이 도시를 점령하고 철저하게 파괴했으며, 주민도 학살하였다. 1736년 나디르샤(재위 1736∼1747)에게 정복되고, 이어서 보하라 한국(汗國)의 지배를 받았으나 마흐무드 아크람칸이 되돌려주어 아프가니스탄의 영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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