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멘드비랑

마리 멘드비랑

요약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치가. 19세기 프랑스 형이상학의 시조로서 철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심리학기초론》, 《일기》 등의 저서를 남겼다.
원어명 Marie-François-Pierre Maine de Biran
출생-사망 1766 ~ 1824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정치, 철학
출생지 프랑스 베르즈락
주요저서 《심리학기초론》(1812) 《일기》(1815~1824) 《인간학신론》(1823∼1824)

본명 Marie François Pierre Gontier de Biran. 베르즈락 출생.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1784년 파리에서 근위사관(近衛士官)이 되었으나 프랑스혁명 중 10월사건 때 부상하여 1793년에 일시 은퇴하고 귀향하였다. M.F.M.I.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한 후인 1797년에 500인의회 의원이 되고, B.나폴레옹 치하에서는 베르즈락 지방장관을 지냈으며(1802∼1812), 이어 왕정복고기에는 입법의회 의원을 역임하는(1812~1814, 1816~1824) 등 정치가로서 활약하였다.

이 동안 그는 1802년의 학사원 현상논문 콩쿠르에서 《사고능력에 미치는 습관의 영향 Influence de l’habitude sur la faculté de penser》으로 1등이 되고, P.J.A.카바니스, 데스튀트 드 트라시 등의 관념학자와 사귀었다. 1805년에는 다르 콩쿠르에서 《사고능력에 대한 비망록 Décomposition de la pensée》으로 1등상을 획득하였다. 이어 학사원 회원이 되었다. 멘드비랑은 19세기 프랑스 형이상학의 시조로서 철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성격은 섬세하고 내성적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감각론의 대표자인 É.B.de 콩디야크의 흐름을 이어받고, 또 카바니스, 트라시 등의 관념파에 가까웠다. 내적이고 직접적인 지각의 불가의적(不可疑的) 성격을 출발점으로 하고, 이에 의하여 우리의 ‘나’는 완전한 자유 의지의 유일하고 분해할 수 없는 형태에서 파악된다. 이 ‘나’는, R.데카르트의 ‘나’가 신체를 사상(捨象)한 ‘나’인 데 반하여, 신체와 정신의 통일체로서의 ‘의지(意志)’이며, ‘의지’하고 활동하는 것이 ‘나’의 근원적 존재의 증명이라고 주장하여, 데카르트와는 달리 “나는 의지(意志)한다. 고로 존재한다(Volo, ergo sum).”라는 명제를 내놓았다. 만년에는 생(生)을 동물적 생, 인간적 생, 영적(靈的) 생(인간과 신과의 합일)의 3단계로 나누고, 말브랑시적(Malebranche的)인 신비적 형이상학 속에 파묻혔다. 저서에는 위의 것 외에 《심리학기초론》(1812) 《일기》(1815~1824) 《인간학신론》(1823∼182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