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리버풀

[ Liverpool ]

요약 영국 잉글랜드의 시티보로(city and borough).
리버풀 시내

리버풀 시내

위치 영국 잉글랜드
경위도 서경 2° 59′ 0″, 북위 53° 24′ 0″
면적(㎢) 113
시간대 GMT (UTC0)
행정관청 소재지 Municipal Buildings Dale St Liverpool L2 2DH
홈페이지 http://www.liverpool.gov.uk/
인구(명) 491,500(2017년)

아이리시해(海)에 면하며, 머지강(江) 하구부의 우안에 있는 해항이다. 리버풀 사람들은 보통 ‘리버푸들리언(Liverpudlians)’으로 불리는데 ‘스카우저(Scousers)’라고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때 ‘스카우즈(Scouse)’는 영국 내에서도 유명한 리버풀 억양과 사투리를 뜻한다. 영국 내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공동체(Black community)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이 리버풀에 있다.

산업혁명 시기 도시의 확장과 함께 주요 외항으로 성장하였고 면직물 등 일반적인 교역물품을 포함, 노예무역의 중계항으로 기능하였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북유럽인들, 아이리시들의 집결지였으며 유명 선박회사 큐나드(Cunard), 화이트스타라인(White Star Line) 등의 탄생지이기 때문에 RMS 타이타닉(RMS Titanic) 호를 포함한 여러 유명 선박들의 모항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록밴드 그룹 비틀즈의 출신지이다. 인구 수는 2017년 기준 491,500명이다.

기후

리버풀의 기후는 온화한 해양성기후로(쾨펜 구분 Cfb), 비교적 온화한 여름과 추운 겨울, 연중 고른 강수량을 보인다. 연평균기온은 10°C 정도이며 가장 더운 달은 7~8월, 가장 추운 달은 12~2월이다.

역사

리버풀이라는 이름은 1190년까지는 ‘Liuerpul’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흙탕물 개울 정도의 의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이름은 ‘Leuerepul, Lyuerpole, Lytherpole, Litherpoole’ 등으로 계속 변화하다가 마침내 ‘Liverpool’이라는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 도시로서 리버풀의 기원은 12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존 왕이 발행한 칙서에는 새 자치도시(borough) ‘Livpul’의 설립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후 1880년에 공식적으로 도시(city)가 되었다. 초기 리버풀은 단 7개의 스트리트(street)로만 이루어져 있었을 정도로 아주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1715년 최초의 상업적 계선독이 머지강변에 완공되었고, ‘Thomas Steer’s Dock’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계선독(The Old Dock)은 최대 100대의 배를 수용할 수 있었으며 강에 바로 연결된 조수독으로도 기능하였다. 1846년에는 앨버트 독(Royal Albert Dock Liverpool)이 완공되었는데 이는 여러 개의 계선독과 건선거로 이루어진 부두였으며 현재는 복합 문화단지로 재개발되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러한 부두들을 기반으로 리버풀은 세계적인 항구로 부상하여 19세기 말까지 전 세계 물류의 40%가 통과하는 무역항이 되었고, 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은 세인트 조지 홀(St George’s Hall), 라임스트리트 역(Lime Street Station) 등 주요 건물들의 설립으로 이어지는 등 지속적인 도시 발전을 가져왔다.

그 밖에도 1773년에는 리버풀맨체스터 운하가 완성되고 1830년에는 최초의 도시 간 철도인 리버풀맨체스터철도가 개통되는 등 리버풀은 항구를 포함한 교통 중심지로서 당시 런던보다 번영하였다. 이때 많은 리버풀 사람들이 선박업계에 종사하며 전세계를 방문하여 리버풀로 다양한 문화들을 들여올 수 있었는데, 1860년대 후반에는 블루퍼넬 해운회사(the Blue Funnel Shipping Line)가 중국인 선원들을 고용하면서 중국 이민자들이 처음으로 리버풀에 유입되었다. 이는 리버풀이 상해, 홍콩 등지와 무역관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말부터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리버풀의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가 위치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집중 포격을 당하며 황폐화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사망하는 등 전쟁 후유증과 극심한 산업 침체를 겪었다. 낡은 항구 주변은 우범 지대로 변했고 풍부한 문화자원을 보유했음에도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쇠락한 항구도시로만 알려져 있었다. 동시에 이 시기에 비틀즈를 포함한 음악 분야가 성장하며 리버풀이 머지 비트(The Mersey Beat)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후 리버풀은 머지사이드 구조계획 등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도시 재생을 추진, 낡은 도시를 문화 상업 공간으로 탈바꿈시켰고 2008년에는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었다. 현재까지도 다수의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적인 도시 개발을 꾀하고 있으며 리버풀의 경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다시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리버풀 경제는 서비스 분야가 주축을 이루며 지식기반 경제 또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는 추세이다. 동시에 도시의 풍부한 건축학적 요소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영화 산업의 부흥을 가져왔다.

산업

리버풀의 전통적인 산업구조는 항구 중심, 제조업 중심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리버풀 고용인구의 60% 이상이 행정, 교육 및 보건,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다음이 유통과 숙박, 요식업이 뒤따르고 기존의 운송업은 약 6%, 제조업도 약 5% 정도로 과거와는 상반된 경제구조를 보이고 있다.

교육

리버풀대학교, 리버풀존무어스대학교, 리버풀호프대학교(Liverpool Hope University), 리버풀 공연예술학교(Liverpool Institute for Performing Arts, LIPA)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교육기관들이 다수 소재하고 있다.

관광

주요 관광지로는 테이트 리버풀, 비틀즈 스토리, 리버풀 세계 박물관(World Museum Liverpool), 리버풀 대성당(Liverpool Cathedral) 등이 있으며 특히 피어헤드(Pier Head), 앨버트 독을 포함한 독 부분, 상업 지구 등을 아우르는 일대는 해양 무역 및 항구 발전 역사의 선구적 사례로서 리버풀-해양 무역도시(Liverpool-Maritime Mercantile City)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