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
[ John Ruskin ]
- 요약
영국의 비평가 ·사회사상가. 예술미의 순수감상을 주장하고 “예술의 기초는 민족 및 개인의 성실성과 도의에 있다”고 하는 자신의 미술원리를 구축해 나갔다.
출생-사망 | 1819.2.8 ~ 190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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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예술 |
출생지 | 영국 런던 |
주요저서 | 《건축의 칠등(七燈)》(1849) 《베니스의 돌 The Stones of Venice》(1851∼1853) 《참깨와 백합》(1865) |
런던 출생.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캘빈주의자인 모친의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부친을 따라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여 미술과 문학에 대한 취미를 길렀고 그림을 배웠다. 부친의 넓은 문학적 취미와 낭만파 시인의 작품, 모친의 교육에서 성서를 접하면서 그의 문학적 경향이 굳어져갔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옥스퍼드대학 재학 중에 이 뜻을 버리고, 졸업한 이듬해인 1843년 낭만파의 풍경화가인 J.터너를 변호하기 위하여 쓴 《근대 화가론》(5권, 1843∼1860)의 제1권을 익명으로 내어 예술미의 순수감상을 주장하고 “예술의 기초는 민족 및 개인의 성실성과 도의에 있다”고 하는 자신의 미술원리를 구축해 나갔다. 이와 함께 《건축의 칠등(七燈)》(1849) 《베니스의 돌 The Stones of Venice》(1851∼1853) 《참깨와 백합》(1865) 등의 대표작을 냈다.
1860년 이후에 그의 관심은 경제와 사회문제로 돌려져 사회사상가로서의 활동으로 전향, 전통파 경제학을 공격하고 인도주의적 경제학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예술의 경제학》(1857)과 1860년에는 《최후의 사람에게》, 1862∼1863년에는 《무네라 풀베리스》를 발표하여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인간개조를 통한 사회개혁을 실현하기 위하여 ‘성 조지조합’을 설립하고 부친의 유산을 희사하였다. 1869년 모교인 옥스퍼드대학 미술교수로 임명되어 미술관을 창설하였으며, 저술과 사회활동으로 쉴 사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방면에 걸친 활동으로 건강을 해쳐 1878년 정신이상을 일으킨 이래 자주 착란상태에 빠지다가 1889년 이후에는 회복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병 가운데서도 틈틈이 쓴 미완의 자서전 《지나간 일마저》(1885∼1889)는 명문으로 알려진 그의 저서 중 가장 뛰어난 문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역참조항목
케이트 그리너웨이, 찰스 노턴, 라파엘전파, 프레데리크 반 에덴, 영국미술, 에이드리언 스토크스, 크라이스트 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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