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혁명

독일혁명

[ Die deutsche Revolution , 獨逸革命 ]

요약 1918년 독일에서 발생한 민주주의 혁명.

11월혁명이라고도 하며, 이 혁명으로 제정(帝政)이 붕괴되었다.

혁명의 원인은 첫째, 독일 제2제정의 정치 ·사회적 후진성과 모순의 심각성에 있었다. 독일 자본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자 영국에 앞서 미국 다음 가는 세계 제2의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융커(지주 귀족)가 지방 자치단체 ·중앙정부 ·프로이센 의회 ·군부 등의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특히 엘베강(江) 동부 지방에서는 융커의 경제적 ·정치적 특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었으므로 자본가 계층의 강대한 경제적 실력과 융커의 정치적 지배권력 사이에 모순이 생기게 되었다. 융커 자신은 자기 영지(領地) 경영법의 자본주의화와 함께 농업자본가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였으나, 종래의 경제적 ·정치적 특권을 그대로 고집하고 민주적 개혁에는 전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융커와 왕실을 중심으로 한 군부와 관료 등의 전제적인 제정기구는 세계사적 조류와 사회의 발전단계면에서 볼 때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형태였으며, 따라서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갔다. 또한 독일제국의 중심을 이룬 프로이센의 반동적인 전제정치는 독일인 일반에게 커다란 반감을 가지게 하였다.

둘째,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의 패배를 들 수 있다. 대전 직전에 이미 제정의 민주적 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지만, 대전의 돌발로 여러 정당과 정부 사이의 협력체제가 수립되어 제정의 위기는 일단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한 총력전의 진행과 더불어 제정의 관료지배는 힌덴부르크 ·루덴도르프의 군부독재가 대신하게 되었고(1916년 8월 이후), 루덴도르프는 정치 ·군사 ·경제의 무제한 독재자가 되었다. 그의 주위에는 제정 각 방면의 중추부대들이 총집결하였으므로 독일 제정은 루덴도르프 독재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의 물자궁핍은 이미 오래 전에 그 정도를 넘어섰으므로 국민의 인내도 극한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1918년 9월 이후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지고 군부의 독재도 무너져갔으며, 그와 함께 제정 그 자체도 붕괴되었다. 이와 같은 국내의 권력 진공상태가 조성되어 혁명상황이 성숙하게 된 것이다.

셋째, 혁명세력의 성장과 그 활동을 들 수 있다. 즉, 독일 사회민주당 우파(다수파 사회민주당)와 일반 병사 등이 전쟁 말기에 평화와 빵과 자유를 요구하며 제정 수뇌부와 대립한 점이다. 1918년 1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회의가 열렸을 때에는 독일 군부의 침략적 태도에 반대하는 대파업이 발생하여 전독일에서 약 100만이 참가하였다. 이 파업 요구는 식량배급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자유 및 러시아 혁명으로 성립된 소비에트 정권과의 무병합(無倂合) ·무배상(無賠償)의 강화를 함께 요구하는 혁명적인 성격으로 발전하였다. 군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2월 3일 파업이 중지되기는 하였으나, 노동자의 다수가 다수파 사회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넷째,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대전의 전승국들이 독일의 대규모적인 민주화와 비(非)군국주의화를 요구한 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