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고

종고

[ 宗杲 ]

요약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선승(禪僧)으로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5대 전인(傳人)이다. 묵조선(黙照禪)을 비판하고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하여 선종 불교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남송 초기에 금(金) 나라와의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한 대표 인물이기도 하다.
출생-사망 1089 ~ 1163
시호 보각선사(普覺禪師)
별칭 대혜종고(大慧禪師), 대혜선사(大慧禪師), 경산종고(徑山宗杲)
국적 중국
활동분야 종교
주요저서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등
시대 송(宋)

속성(俗姓)은 해(奚), 자(字)는 담회(曇晦)이며, 호(號)는 묘희(妙喜), 운문(雲門)이다. 선주(宣州) 영국현(寧國縣, 지금의 安徽省 宣城市) 출신이며, 1164년 송(宋) 효종(孝宗)에게 ‘대혜선사(大慧禪師)’의 칭호를 받아 ‘대혜 종고(大慧禪師)’라고도 불린다. 오랜 기간 항주(杭州)의 경산(徑山)에 머무르며 가르침을 펼쳐 ‘경산 종고(徑山宗杲)’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호는 보각선사(普覺禪師)이다.

북송(北宋) 철종(哲宗) 때인 1089년 음력 11월 10일에 태어났으며, 12세 무렵에 동산(東山) 혜운원(慧雲院)에서 혜제법사(慧齊法師)를 스승으로 삼아 출가해 17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처음에는 조동종(曹洞宗)의 문하에서 수행을 하였으나, 전승(傳承)을 중시하는 조동종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21세에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의 담당선사(湛堂禪師) 문준(文準, 1061∼1115)의 제자가 되었다. 문준은 입적하기 전에 종고에게 임제종 양기파의 원오선사(圜悟禪師) 극근(克勤, 1063∼1135)에게 가르침을 받으라고 하였으나, 당시 극근은 쓰촨 성[四川省]의 자오줴[昭覺]에 머무르고 있어 미처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1124년 카이펑[開封]의 천녕사(天寧寺)에서 극근에게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었고, 극근에게서 <임제정종기(臨濟正宗記)>를 받아 임제종 양기파의 제5대 전인이 되었다.

당시 송 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금(金) 나라의 침략으로 1126년 수도인 카이펑을 빼앗기고 휘종(徽宗)과 흠종(欽宗)마저 포로로 사로잡혔다. 흠종의 동생인 고종(高宗)은 1127년 임안(臨安, 지금의 浙江省 杭州)으로 천도하여 남송을 세웠고, 송 조정은 금나라와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主戰派)와 화친을 해야 한다는 주화파(主和派)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종고는 선(禪)을 보급하며 사대부들과 폭넓게 교유하였고, 주전파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1126년에는 승상(丞相) 여호문(呂好問, 1064~1131)에게 불일대사(佛日大師)의 칭호와 자의(紫衣)를 받았으며, 1137년에는 금과의 항쟁을 이끌고 있던 장준(張俊, 1086~1154)의 청으로 경산사(徑山寺)에 머무르며 가르침을 펼쳤다.

그러나 1141년 고종의 신임을 받던 재상(宰相) 진회(秦檜, 1090~1155)는 주전파인 장준(張俊)과 한세충(韓世忠, 1089~1151), 악비(岳飛, 1103~1142)의 병권(兵權)을 빼앗았고, 악비를 모함하여 죽였다. 종고도 이듬해 장구성(張九成, 1092~1159) 등과 반역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받아 승적(僧籍)에서 제명되고 형주(衡州, 지금의 湖南省 衡陽)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1150년에는 다시 매주(梅州, 지금의 廣東省 梅縣)로 유배되었다. 그는 유배 기간에 스승인 원오선사(圜悟禪師) 극근의 어록을 모아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편찬하였다.

1155년 진회가 죽은 뒤에 사면되어 항주로 돌아온 종고는 영은사(靈隱寺)에 머무르다가 1157년 장준의 천거로 다시 경산사의 주지(住持)가 되었다. 이 무렵 조동종의 굉지선사(宏智禪師) 정각(正覚, 1091~1157)과 선법(禪法)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며 ‘화두선(話頭禪)’이라고도 불리는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했다.

1159년 저장성[浙江省] 사명산(四明山)의 육왕사(育王寺)로 거처를 옮겼지만, 조정의 요청으로 다시 경산으로 돌아왔다. 1161년 경산에 명월당(明月堂)을 세우고 은거하였고, 1164년 효종(孝宗)에게 대혜선사(大慧禪師)의 칭호를 받았다. 이 해 음력 8월 10일에 명월당에서 74세의 나이로 입적하여 보각선사(普覺禪師)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묘탑의 이름은 보광(寶光)이라 하였다.

종고는 임제종 양기파의 5대 전인으로 간화선(看話禪)을 선종(禪宗) 수행의 주류로 자리잡게 한 인물이다. 그는 조동종의 굉지선사(宏智禪師) 정각(正覚)과 선법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며, 공안(公案)을 통해 본래 지닌 불성을 자각하여 깨달음을 얻는 임제종의 선법이 올바르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올바른 수행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고 보고, 좌선(坐禪) 자체를 중시한 선법을 묵조선(默照禪)이라며 비판하였다.

종고 이후 임제종 양기파는 선종의 정통으로 자리잡았으며, 종고의 사상은 한국과 일본의 불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는 고려의 지눌(知訥, 1158~1210)이 종고의 <대혜어록(大慧語錄)>을 통해 간화선을 받아들였고, 일본에서는 1246년 남송의 선승인 도륭(道隆, 1213~1278)이 일본으로 건너가 종고의 선법(禪法)을 전래하였다.

저술로는 그의 어록을 정리한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대혜보각선사보설(大慧普覺禪師普說)>이 있으며, <대혜보각선사종문무고(大慧普覺禪師宗門武庫)>,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대혜보각선사법어(大慧普覺禪師法語)>, <대혜고선사어(大慧杲禪師語)>, <대혜집초(大慧集鈔)>, <선림보훈(禪林寶訓)> 등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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