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실업친목회

대정실업친목회

[ 大正實業親睦會 ]

요약 1916년 11월에 결성된 친일단체.
구분 친일단체
설립일 1916년
설립목적 일제의 무단정치 순응
주요활동/업무 국가경축일, 법령의 주지, 납세의무 강조 등에 관한 연구
소재지 한국 서울
규모 회원 250명

대정친목회라고도 한다. 일본이 국권을 침탈한 뒤 모든 결사가 금지되었던 무단정치 시기인 1916년에 유일하게 결성된 친일단체로 조중응(趙重應)을 대표로 하여 설립되었다. 상호 의사소통을 통해 정의(情誼)를 두텁게 하고 정신수양을 꾀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으며, 국가경축일·법령의 주지·납세의무 강조·근검저축·식산흥업·예의질서 등에 대해 연구하여 한국 민중들로 하여금 일제의 무단정치에 순응하도록 하였다.

1921년 1월에 개최한 대회에서 일본인은 고문으로 물러나고 주로 조선의 귀족·대지주·친일예속자본가들의 친일단체로 변신하였다. 회장에 민영기(閔泳綺), 부회장에 조진태(趙鎭泰), 이사에 예종석(芮宗錫) 외 14명, 평의원에 백완혁(白完爀) 외 27명, 평의장에 한상룡(韓相龍), 고문에 이완용·민영휘(閔泳徽)·이윤용(李允用)을 뽑았으며, 회원도 250명으로 늘었다. 강령도 "조선인은 서로 친목하고 덕업을 서로 베풀며, 어려움을 서로 구하자, 산업 발달과 증식에 힘써 생활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하자"로 바꾸었다. 이는  한국 국민의 반일독립의식을 흐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제의 정치선전인 일선융화정책에 이용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대정실업친목회의 기관지로 인가해주었으나 젊은 기자들의 반발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1924년 3월 한민족의 독립의식 말살과 총독정치 지지를  목적으로 설립된 각파유지연맹(各派有志聯盟) 발기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