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미술

네덜란드미술

요약 플랑드르 미술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독자성을 확립하기 시작한 15세기부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생선 파는 노파

생선 파는 노파

네덜란드의 건축은 역사 이전, 그리고 로마 시대에 발굴된 유물이 나이메헨의 미술관을 비롯하여 각지의 미술관에 수집되어 있으나 기록할 만한 것은 못된다.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서부터 교회가 건립되기 시작하였는데, 카롤링거 왕조(王朝)부터 목조건물은 석조건축으로 바뀌었다.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중세문화가 모두 그러하듯이 미술은 지리적·정치적 여건으로 볼 때 언제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전파되어 카롤링거 왕조의 가장 오래 된 교회도 마스트리흐트·위트레흐트 등, 라인강(江)에서 마스강(江)을 따라 남아 있다. 마스트리흐트에 있는 본성당(本聖堂)인 성(聖)셀바티우스성당은 10세기의 중요한 전통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위트레흐트에 있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본성당도 발굴되었다. 11세기에 들어서 위트레흐트를 중심으로 로마네스크 건축이 발달하였는데, 성(聖)페테르성당은 그 예전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12세기에 완성한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서 건축의 주요부분인 둥근 천장이 돌로 구축되었다. 위트레흐트의 성(聖)니콜라스성당, 마스트리흐트의 본성당은 그 대표작들이다. 13세기 후반에 순수한 고딕 양식이 도입되었는데 위트레흐트가 중심이 되어 점차 전파되었다. 옛 본성당에 새로운 성가대석이 마련되었고, 14세기에 이르러서는 본성당에 서탑(西塔)이 첨가되었다(1331∼1382). 우뚝 솟은 탑은 아메르스포르트·레넨·마스트리흐트·프로닝겐 등지에 있는 탑이 전형적이다. 그러나 14세기 말경에 위트레흐트의 국제양식 대신 투르네이의 본성당, 도시에서 퍼진 슈헬데강 지방의 고딕 건축양식의 영향은 헤이그의 공공 건축물(hall)로 나타나고, 해안지방으로 전파된 프란다스의 고딕 양식은 미델부르크의 콜성당, 델프트의 고성당(古聖堂)의 탑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브라반트에서 유래된 고딕 양식은 도르드레히트의 본성당, 델프트의 신성당(新聖堂)의 탑 등과 같은 대표적 건축을 남겼다.

16세기에 들어와서 르네상스 양식이 성(城)이나 귀족의 저택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건축은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스파냐에서 온 건축가들에 의하여 소개되었다. 이때부터 전 네덜란드의 도시들이 번영하기 시작하여 탑 위에 뾰족탑을 다시 올려 할렘의 성, 성당의 종탑(鐘塔)과 암스테르담의 고성당을 위시한 형형색색의 뾰족탑은 네덜란드의 도시를 실루엣으로 화하게 하는 정취를 감돌게 하였다. 대부분의 시청(市廳)들이 이 때 건립되었으며, 비벤 드 케이의 레이덴 시청사의 정면(1595), 헨드리크 드 카이저(Hendrik de Keyser)의 델프트시 청사의 정면 등이 유명하다. 1620년부터 30년 사이에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은 급변하여 30년 이후부터는 순수한 네덜란드 고전주의의 건축물이 세워지게 되었다. 야코프 반 캄펀이 헤이그에 세운 마우리츠호이스(현재 왕립미술관), 암스테르담의 시청(현재 왕궁) 등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들은 그 대표작이다.

이 밖에도 데벤테르의 시청, 엥크호이젠의 시청도 이때 건립된 고전주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들이다. 18세기에 피테르드 스와르트가 프랑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헤이그시(市)의 왕립극장(1770)과 같은 건물을 세웠는데, 이것은 19세기 말까지 프랑스와 영국의 신(新)고딕 양식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네덜란드의 근대건축 선구자인 H.P.베를라헤의 대표작으로는 암스테르담의 거래소(1898∼l903) 등이 있다. 그리고 요절한 데 클레르크도 손꼽을 수 있다. 그들의 건축운동은 G.몰리에르에게서 지도받은 그룹과 몬드리안, 반 도스보르프, 아우트, 반 에스테렌, 리트펠트 등의 ‘데스테일(De Stijl)’의 그룹에 의하여 계승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배출되어 네덜란드 도시건축에 종사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조각
중세의 조각은 건축과 마찬가지로 마스트리흐트, 마스강 지방, 위트레흐트에 있는 여러 성당 내의 장식과 유물이나 묘석(墓石)에 남아 있다. 수집품들은 현재 암스테르담과 위트레흐트 미술관 등에 진열되어 있다. 14세기 후반에 북네덜란드의 조각가·화가들이 부르고뉴공의 궁정에서 활동하였지만 C.슬뤼터르와 같이 위대한 조각가의 작품은 남아 있지 않고, 다만 브레다의 얀 반 폴라넨 묘석(墓石)을 슬뤼터르가 부르고뉴공(公)의 궁정으로 오기 전에(1385?)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위트레흐트에는 아드리안 반 베셀(1420∼1489)의 네덜란드 중세 조각의 최고 걸작품이 있다(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그 후 17세기까지 지방작가들이 많았지만 특기할 만한 작가는 없다. 17세기 초에 위대한 건축가 헨드리크 드 카이저의 조각이 델프트의 신성당 내의 빌럼 1세의 묘(廟)에 있다. 카이저는 덴마크의 프레데릭볼크성(城)의 부조(浮彫)를 제작하였는데 다른 나라까지 명성이 높았다. 이탈리아에서 수학한 알토스 케리누스(1609∼1668), 그 문하생 벨프루스트(1624∼1698)가 바로크 조각을 도입하였고, 18세기에는 프란다스의 조각가들이 많이 와서 제작에 참여하였다.

1875년경부터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네덜란드의 근대미술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베를라허의 암스테르담 거래소의 조각을 맡은 치르(1866∼1947), 다 코스타(1863∼1939) 등 많은 작가가 나왔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레데카(1885∼1956)를 원로(元老)로 많은 작가들이 나왔으며, 이들 중에는 북유럽적인 표현주의풍의 작가가 많았다.  

네덜란드의 회화
중세 네덜란드의 회화는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의 회화들은 대부분 수도원에서 만든 복음서의 에피소드이며, 많지는 않으나 남아 있는 벽화로서는 13세기의 데벤테르의 니콜라스성당 벽화를 들 수 있다. 14세기에는 2개의 리메드성서 사본 속에 있는 삽화가 있는데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 시대의 헬델란트·위트레흐트를 중심으로 제작된 아름다운 삽화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프로닝겐대학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니콜라에스 반델프트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소박하고 사실주의(寫實主義)의 개성적인 화풍으로 유명하다. 얀 반 에이크는 1422년부터 1424년까지 헤이그의 홀란트 백작의 궁정화가로 활약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헤이그·하우다·레이덴·할렘 등의 각 도시마다 지방의 전통을 살린 화풍이 발전되고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얀 반 에이크가 부르고뉴공의 궁정화가로 떠나간 것과 같이 북네덜란드 출신 화가들인 요한 마르엘, 디르크 바우츠, 헤라르트 다비트, 그리고 조각가 C.슬뤼터르 등도 떠나 네덜란드라는 이름이 아닌 플란다스의 이름으로 미술사(美術史)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들 중 1455년 레이덴에서 태어나 할렘에서 활동한 게르트겐 토트 신트 얀스의 내적이며 심정 깊은 소박한 사실주의의 작품은 걸작으로 꼽힌다. 르네상스의 영향은 네덜란드에도 파급되어 암스테르담의 야콥코르넬리스 반 오스트자넨, 알크마르의 코르넬리스 부이스, 레이덴의 코르넬리스, 레헤브렉스, 또한 젊어서 죽은 뤼카스 판레이던, 만년을 북네덜란드에서 보낸 플란다스의 화가 마뷔즈(얀 고살트), 위트레흐트의 얀 반 스코렐 등 많은 작가를 배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뤼카스 판레이던과 베네치아파(派)에 영향을 끼친 스코렐은 특출하다.

후기에는 피텔 칼트센, 마르렌 반 헴스케르크, 암스테르담의 코르넬리스 케텔 등의 작가들은 아카데믹한 기술을 발휘하여 각양각색의 제재(題材)를 써서 그렸다. 17세기의 네덜란드 회화가 세계사적으로 꽃피우게 된 것은 독립전쟁에서의 승리와 새 국가의 탄생을 갈구하는 열렬한 시민계급의 불굴의 투지와 자유사상을 배경으로 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근원은 이미 전시대부터 기술적으로 싹트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인간과 시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의 네덜란드의 회화는 방법상으로 보면 사실주의이고 장르상으로 볼 때에는 풍경화·풍속화·정물화의 독립이다. 여기서도 16세기의 이탈리아·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많았다. 가톨릭의 유일한 거점이었던 위트레흐트는 이탈리아의 바로크, 그 중에서도 특히 카라바지오의 화풍을 많이 이어받았다. 파울 모레르제, 딜크 반 바브렌, 아브라함 부롬멜트, 헤라르트 반 혼톨스트, 헨드리크 테르브루헨 등이 있고 명암이 강한 카라바지오풍(風)의 사실주의로서 종교화·우화(寓話)를 그렸다. 할렘을 중심으로 한 플란다스 회화에 이어지는 반 만델, 코르넬리스 반 할렘의 화풍이 있고, 로마에서 제작하고 있던 앨스하이머의 문하생이며 렘브란트의 스승이었던 피텔 라스트만, 얀 피나스 등이 있다. 그 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얀 보트, 코르넬리스 반 폴렘불프, 니콜라스 벨켐, 아드리안 반 델 벨프, 필립스 베벨만 등의 작가들이 있다. 이상의 여러 작가들은 대부분 당시의 네덜란드 귀족, 상류사회의 살롱을 누비며 호사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대표하는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등과 이탈리아 바로크, 특히 카라바지오와의 간접적인 중요관계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1580년경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나 1666년 할렘에서 죽은 F.할스는 시민대(市民隊)의 군상(群像)과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문하생들도 많았는데 동생인 딜크 할스, 피텔 유데, 아드리안 브로베르, 아드리안 판 오스타더, 포트, 얀 미엔세 모레날, 유디트 레이스텔 등이다. 브로우베르와 오스타더는 하층사회의 농민의 화가로 인정되고 있는데, 브로베르는 ‘네덜란드의 비용’이라 할 만큼 유명하다.

위대한 렘브란트의 문하생들도 많다. 레이덴 시대에는 얀 리벤스, 헤라르트 도우, 솔로몬 코닝크 등의 동료를, 암스테르담의 스튜디오에서는 카렐 파브리티우스, 호벨트 프링크, 페르디난트 볼, 니콜라스 마스 등이 있는데 주로 초상화가가 많았다. 당시에는 중산계급, 또는 하층농민의 화가가 많았는데, 중산계급의 실내화가로는 헤나르트 테르보르흐, 가브리엘 메추, 헨드리크 반 데르 부르흐, 야콥 오크텔벨트, 얀 스테인, 피렐 드 고흐를 들 수 있는데, 이들 작가들이 민중화가로서 제재(題材)에 심취하고 있던 중 델프트의 얀 페르메이르는 조형(造形)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풍경화가로는 얀 반 고이옌, 야콥 반 로위스달, 그의 백부인 살로몬 반 로위스달, 헨드리크 아벨캄프, 메인더르트 호베마 등이 있다. 정물화가에는 빌렘 그라스 헤다, 피텔 그라스, 빌렘 칼프 등이 있는데 네덜란드 정물화의 독자적인 성격과 높은 전통을 창조하였다.

17세기 후반부터 네덜란드의 회화는 정체되기 시작하여 19세기 초까지 많은 작가들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명맥만 유지하는 데 그쳤고, 동시에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작가로서 아리 셰펠, 초기 인상파의 화가 용킨트는 프랑스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현대 네덜란드의 미술은 1870년부터 헤이그에 정착을 하고 어두운 농민생활을 새로운 사실주의로 묘사한 J.이즈라엘스와 그의 지도를 받은 헤이그파의 화가들에 의하여 시작된다.

메스다하, 안톤 마우페, 야콥 마리스, 빌렘 마리스, 웨이센부룩, 매슈마리스 등은 프랑스의 발비종의 정신과 기술에 바탕을 둔 네덜란드적 성격을 지닌 화가들이다. 헤이그파의 서정적인 회화에 대하여 네덜란드 인상주의의 정력적인 작가 부라이트넬이 나타났는데, 이때 반 고흐는 프랑스에 있었다. 19세기 말에 아레베, 얀 베트 등 새로운 판화운동 및 얀 토롭의 상징주의가 대두하였다. 20세기에는 얀 슬뤼테르의 표현주의, 몬드리안을 시조로 하는 ‘데 스테일’의 추상적 예술운동이 일어나 세계적으로 파급되었는데, 건축·공예 방면까지도 많은 작가들이 이를 계승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공예
네덜란드가 공예로써 세계적 명성을 날린 것은 태피스트리(tapestry:소모사 등으로 풍경 같은 것을 짠 장식용 직물)와 델프트 도기이다. 1585년 안트베르펜이 점령당하자 이곳 상인과 공인들은 북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이들은 미델불프와 델프트에 태피스트리 공장을 세워 반 만델 등 여러 화가의 디자인을 받아 짰다. 스피링크를 비롯한 그 밖의 공장들이 세계적이었으나 프랑스의 고블랭(새·꽃 등을 짠 벽걸이용 두꺼운 직물)이 등장하면서부터 17세기 말에는 쇠퇴하였다.

1650년경의 델프트 도기는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모방한 것이다.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는 인기가 있어 유럽 및 인도까지 수출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영국 도자기에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가구, 그 중에서도 특히 장류(찬장·책장·장식장), 은그릇, 유리 등은 17세기 이래 네덜란드적(的) 전통을 살려 내려오고 있다. 20세기 초에 건축가 베를라허, 조각가 치르, 화가 토롭 등에 의한 공예의 근대화 운동은 현재까지도 많은 작가들에 의하여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