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로

김한로

[ 金漢老 ]

요약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의 장인. 태종과는 문과에 함께 급제한 동방으로 조선 개국 뒤 태종의 우대를 받았다. 그러나 세자궁에 여자를 출입시키고, 보관하던 사초를 불태우는 등의 일로 자손들의 벼슬길도 막히게 하였다.
출생-사망 1367 ~ ?
본관 광산
별칭 광산군

본관 광산.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장인. 1383년(우왕 9)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예의사좌랑(禮儀司佐郎)을 지냈으며, 태종과는 문과에 함께 급제한 동방(同榜)으로 조선 개국 뒤 태종의 우대를 받았다. 1404년(태종 4) 이조전서(吏曹典書)가 되어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나, 명나라에 있는 동안 행상을 거느리고 가서 사리사욕을 채운 사건이 탄로나 파직되었다. 1407년 딸이 양녕대군과 혼인하여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가 되고, 1408년 한성부판사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9년 예조판서에 올라 광산군(光山君)에 봉해지고, 이어 대사헌(大司憲) ·의정부참찬사(參贊事) ·예문관대제학 겸 의용순금사판사(義勇巡禁司判事) ·의정부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1418년 세자궁에 여자를 출입시켜 세자를 오도하였다는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고, 의금부에 하옥되어 직첩이 몰수되고 죽산(竹山)으로 부처(付處)된 뒤 세자와의 인연이 끊겼다. 1425년에는 보관하던 사초(史草)를 불태워 자손금고(子孫禁錮)의 처분이 가중되는 등 자손들의 벼슬길도 막혔다. 뒤에 신원되어 좌의정이 추증되었다.

참조항목

양녕대군, 태종

역참조항목

예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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