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진

김학진

[ 金鶴鎭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고종 때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1906년(광무 10) 홍문관태학사를 지냈으며, 1907년(융희 1) 기로소에 들어갔다. 1910년 국권피탈 뒤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출생-사망 1838 ~ ?
본관 안동
성천
후몽
출생지 서울

본관 안동. 자 성천(聖天). 호 후몽(後夢). 서울 출생. 이조판서 병교(炳喬)의 손자. 명균(命均)의 아들. 좌균(左均)의 양자. 1871년(고종 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검열 ·교리 ·동부승지 ·호조참의 ·외무아문참의(外務衙門參議) ·이조참의 ·대사성(大司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94년 도승지를 거쳐 형조 ·공조 판서를 지냈으며, 전라도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자 전라도관찰사 김문현(金文鉉)이 파직되고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이어 병조판서가 되고, 1899년 홍문관학사 ·궁내부특진관 ·시종원경(侍從院卿) ·태의원경(太醫院卿)을 거쳐, 1906년(광무 10) 홍문관태학사를 지냈으며, 1907년(융희 1) 기로소에 들어갔다. 1910년 국권피탈 뒤 일제로부터 남작(男爵)의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