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명

김덕명

[ 金德明 ]

요약 동학 금구의 대접주. 1894년 동학 교도 2000명을 이끌고 전봉준 등과 함께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켰다. 1895년 관군에게 패하자, 전라북도 순창에서 재기를 모의하던 중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출생-사망 1845.10.27 ~ 1895.3.29
본관 언양
덕명
용계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전북 김제

본관은 언양(彦陽)이며 자 덕명(德明)이고 이름은 준상(峻相), 호는 용계(龍溪)이다. 1845년 10월 27일 전라북도 김제 모악산 자락이 펼쳐진 원평리(院坪里)  용계마을에서 출생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용계장군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어린시절부터 전봉준과는 이웃마을에 살면서 교류하였다. 전봉준의 외가가 언양 김씨로 먼 친척으로 여겨진다. 1894년(고종 31) 최경선(崔慶善)·김봉년(金奉年)·김봉득(金鳳得)·유한필(柳漢弼) 등 동학교도 2,000여 명을 이끌고 전봉준(全琫準)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으며 농민군의 대접주가 되었다.

1894년 12월 5일(음력 11월 9일)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주성으로 퇴각하였고 12월 16일 고향인 김제 원평으로 이동하여 군량미를 모으고 전력을 재정비하여 관군과 일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관군과의 전투에서 패퇴하고 말았으며 김덕명은 집안의 재실이 있는 안정사 절골에 은거하였다. 몸을 의지하였다가 오히려 밀고에 의해 1895년 1월 25일 새벽, 관군에게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졌다. 이후 서울로 압송되었고 그해 3월 29일 전봉준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역참조항목

김봉득, 언양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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