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상
[ 金鸞祥 ]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후 검열로 등용되었다. 선조 초에 응교 · 직제학 등을 거쳐 대사성이 되었다.
출생-사망 | 1507 ~ 1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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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청도 |
자 | 계응 |
호 | 병산 |
활동분야 | 행정 |
본관 청도. 자 계응(季應). 호 병산(缾山). 1528년(중종 23) 사마시를 거쳐 1537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후 검열(檢閱)로 등용되었다. 1547년(명종 2)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윤원형(尹元衡)에 의하여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후에 단양으로 이배(移配)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선조 초에 응교(應敎) ·직제학 등을 거쳐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영천의 오산사(梧山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