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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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후기 문신. 승지 · 이조참의를 역임하고, 강화부유수를 거쳐 대사헌이 되고,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다. 특진관이 되고, 이듬해 호조참판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를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이 세워졌다.
출생-사망 1675 ~ 1755
본관 안동
경하
창백헌·남애·계형
시호 효정
주요작품 《창백헌집》

본관 안동. 자 경하(景賀). 호 창백헌(蒼白軒)·남애(南厓)·계형(繼亨). 시호 효정(孝貞). 1710년(숙종 36) 생원(生員)이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어 정자(正字)가 되었다. 1716년 검열,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721년(경종 1) 봉교(奉敎)·정언(正言) 등을 거쳐 1725년(영조 1) 사서(司書) ·수찬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교리·헌납을 거쳐 이조좌랑을 지내고, 1727년 대사간에 올랐다. 승지·이조참의를 역임하고,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를 거쳐 1740년 대사헌이 되고,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다. 1744년 특진관(特進官)이 되고, 이듬해 호조참판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746년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로 함경도시관(咸鏡道試官)을 지냈으며, 한성부판윤 ·형조판서를 거쳐 좌참찬이 되었고, 이듬해 예조판서, 1749년 의금부판사, 1751년 우빈객(右賓客) 등의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한 후, 1754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문집에 《창백헌집(蒼白軒集)》이 있다.

참조항목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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