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영계역모사건

교영계역모사건

[ 敎英契逆謀事件 ]

요약 1775년(영조 31) 춘천지방을 중심으로 조직된 교영계가 중심이 되어 역모를 도우려 한 서당계사건(書堂契事件).

영조 즉위 뒤 김일경(金一鏡) 등의 소론계가 노론계의 집권을 막으려고 일으킨 신임사화가 날조된 것임이 드러나 소론계가 몰락하자, 불만을 품은 김일경의 잔존세력은 일찍부터 많은 동지를 모아 군사를 일으킬 대규모 반역모의를 계획하였다.

그런데 1775년 나주벽서사건을 수습한 것을 기념하려고 시행된 토역경하정시(討逆慶賀庭試)에 응시한 심정연(沈鼎淵)이 답안지에 조정을 비방하고 집권대신을 공격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 역모사건이 발각되고, 그 결과 심정연 ·신치운(申致雲) ·유봉성(柳鳳星) ·이거원(李巨源) ·박사집(朴師輯) 등 연루자 수십 명이 처형되고, 소론세력은 결정적으로 거세되었다.

이 역모를 도우려고 조직된 교영계는 처음에는 훈장 유봉성이 학동을 가르칠 목적으로 마을사람의 동의 아래 조직된 서당계였으나, 역모에 관련되면서 뜻을 같이한 동지로서의 교영계로 새롭게 바뀌었다. 이들은 미륵신앙과 결속하여 영동지방의 유리민(流離民) ·승려 등 불만세력을 규합하는 한편 각 동네의 향도복색(香徒服色)을 빼앗아 춘천 관아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이어 서울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드러남으로써 역모는 실패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 노론 ·소론 등의 당파로 나누어진 양반 지배층 안의 권력투쟁의 파생물이었고, 18세기 이래 향촌사회의 몰락한 양반과 지식인들의 현실비판 의식이 조선왕조에 대한 정치적 변란으로 발전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서 무너져가는 조선 봉건사회의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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